['합의의 덫'에 빠진 한국] 60% 벽에 발목잡힌 여, 야 눈치보며 '법안 흥정'
여야가 최종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민연금을 볼모로 한 ‘반쪽 개혁’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국회선진화법이 개혁 후퇴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과의 합의를 쟁점 법안 처리의 필수 조건으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여당의 협상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내에선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의 주요 분기점 중 하나로 지난 3월 말 국민대타협기구가 별다른 성과 없이 90일간의 활동을 접고, 추가 논의를 위해 공무원단체가 참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한 것을 꼽고 있다. 당시 연금 개혁 협상에 참여했던 일부 여당 의원은 실무기구 구성에 반대하고, 개혁안 논의를 여야가 주도하는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위에서 야당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정해진 시한 내 개혁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 지도부는 야당이 요구한 실무기구 구성 요청을 받아들였고, 지난 2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연계한 개혁안에 합의했다.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화법으로 모든 법안이 야당 동의 없이는 처리할 수 없게 돼 있어 야당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이런 법 체제에선 모든 게 주고받기식 정치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은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에선 황우여 원내대표와 남경필 황영철 김세연 의원 등이 속한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선 김진표 원내대표와 김성곤 원혜영 김춘진 의원 등이 법안 통과를 이끌었다.

이후 정권을 잡은 새누리당은 이 국회선진화법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야당 반대로 50일 넘게 표류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작년 세월호 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여야 대치 국면이 조성되면서 각종 민생·경제활성화 법안 처리가 줄줄이 미뤄지기도 했다. 여야가 각각 밀고 있는 핵심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이견이 없는 법안을 함께 묶어 ‘패키지 딜’도 성행했다.

■ 국회선진화법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등으로 제한하고 상임위원회에서 통과가 안 되는 쟁점 법안은 ‘안건 신속처리제도’를 통해 본회의에 올리도록 했다. 해당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 또는 전체 국회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