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챙기겠다"며 버티던 이 총리의 전격적 결단 배경
여론 악화에 與 지도부도 돌아서고, 충청 여론까지 이반 조짐

"국정을 한치 흔들림없이 해야 할 책무가 있다"(4월16일. 박근혜 대통령 중남미 순방 출국일)
"대통령이 계실 때보다 더 열심히 국정을 챙기겠다"(4월17일, 박 대통령 출국 이후 첫날)
"대통령께서 안 계시지만 국정이 흔들림없이 가야 한다.

국정을 챙기겠다"(4월19일, 4·19 기념식장)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길에 오른 이후에도 국정수행 의지를 거듭해서 피력하던 이완구 총리가 20일 한밤중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더 이상 악화되는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완종 파문'이후 점증하는 사퇴 압박 '쓰나미'에 저항하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친정'인 새누리당의 자진사퇴 압박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초 박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27일 이후 이 총리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었다.

박 대통령이 출국전에 김무성 대표와 가진 단독회동 결과를 존중해서였다.

하지만 이 총리의 해명과 반박이 거짓말 논란 등으로 비화되고 등 여론이 악화되자 조기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전날 서울 관악을 현장최고위원회의 직후 비공개 회의를 갖고 이 총리 거취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를 맞댄 결과 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 귀국 전에 이 총리에게 자진사퇴를 유도하기로 하고, 청와대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제 이 총리에게 남은 길은 자진사퇴하는 것 밖에 없다"면서 "이 총리가 사퇴 요구를 안 받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난감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르면 22일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식화하며 공세의 고삐를 죈 것도 이 총리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해임건의안이 상정됐을 때 야당 의원들이 전부 찬성하고 여기에 동요하는 일부 여당 의원들도 가세해 찬성표를 던진다면 이 총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총리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된다.

결국 이 총리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새누리당이 4·29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도 전직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 총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총리가 계속 '버티기'에 나서고, 4·29 재·보궐선거이 여당의 참패로 끝날 경우 이 총리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까지 뒤집어쓰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뿐만아니라 '식물 총리'와 다름 없는 처지에서 총리직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국정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국정 운영을 조속히 정상화하기 위해 결단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 총리는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국정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면서 국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자신이 결백을 주장하며 계속 총리직에 연연할 경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박 대통령에게 결국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게 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리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 지역 여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던 점도 더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이후 이 총리 문제가 불거지자 이 총리의 지역구인 부여·청양 주민들과 성 전 회장의 과거 지역구인 서산·태안 주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감정 싸움을 빚는 양상까지 번지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충청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최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완구 국무총리는 총리직을 즉각 사퇴하고 검찰 수사를 받으라"고 촉구한 점도 이 총리에겐 엄청난 압박이 됐을 법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을 규명할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최근 검찰 수사에서 "성 전 회장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던 이 총리가 성 전 회장과 200여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수사팀이 성 전 회장 차량에 있는 하이패스 단말기, 내비게이션 등을 압수해 당시 성 전 회장의 행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독대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토대로 검찰 수사망이 옥죄어오자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총리는 박 대통령에 사의를 표명한 당일 아침 출근길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을 삼갔다.

그 전날까지 "국정을 챙기겠다"던 언급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밤 전격적인 사의 표명의 전조(前兆) 였던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