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기관차 같다. 국가가 경제적 자유를 구속하는 일이 다반사고, 과잉범죄화로 기업활동의 대부분을 범죄 목록으로 만들어간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 장부를 들춰보고 무차별 세무조사에 나설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전문성에 기초해야 할 국가 기능은 혼선을 빚고 있다. 무소불위 국회가 벽돌 찍듯 쏟아낸 소위 경제민주화 법률들은 속속 시행되고 있다. 과잉입법 금지, 비례의 원칙, 이중처벌 금지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법률들이다.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법제화한 결과, ‘네가 네 죄를 알렸다’는 식의 과잉엄벌이 난무할 판이다. 경제적 자유는 질식하고, 국가는 형벌지상주의로 가고 있다.

226개 지자체까지 세무조사에 나서고

기업들이 앞으로는 국세청뿐 아니라 전국 시·군·구로부터도 세무조사에 시달리게 됐다. 2013년 지방세기본법, 지방세법,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올해(작년 소득분)부터 법인이 내는 지방법인세를 징수하는 세정당국이 국세청에서 전국 226개 시·군·구로 바뀐 탓이다. 오는 5월부터 모든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에 사업장이나 지사(지점)를 둔 기업의 본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일 수 있게 된다.

이런데도 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발뺌하기 바쁘다. 2013년 ‘중앙·지방 간 기능 및 재원조정방안’에 따라 과세체계를 바꾸며 지자체에 조사권도 함께 따라가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뒤늦게 “기업에 대한 지자체의 세무조사를 3년간 유예하고, 그 후에도 세무조사를 최소화하겠다”며 파장 축소에 급급하다.

누구보다 당혹해하는 건 기업이다. 9000억원 이상 급증한 지방법인세 폭탄도 모자라 세무조사 폭탄까지 맞을 판이다. 전국 각지에 사업장이나 지사(지점)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 은행, 증권, 보험사 등은 “앞으로 226개 기초 지자체들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세청 단일기관에 제출하던 각종 재무관리 서류도 수십, 수백개 지자체에 동시에 제출해야 한다. 기업이 여기에 일일이 응대하며 세무조사까지 받는다면 아예 정상적 기업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각 지자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해부터 세무공무원을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751명, 올해 400명 등 내년까지 총 1500여명을 충원한다고 한다. 가뜩이나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마구잡이 세무조사로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법을 엉터리로 만든 것이나, 이제 와서 유예니 최소화니 하는 것이나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에 대한 국가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중기청에 검찰까지…처벌 또 처벌

검찰이 SK건설의 담합 행위에 대해 고발요청권을 행사해 논란을 빚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부과 처분을 내린 기업에 대해 검찰이 미진하다며 고발을 요구해 원점에서 수사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주무부처의 징계처분을 다른 정부 기관이 제동을 걸고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중처벌, 과잉징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2009년 새만금방수제 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로 SK건설에 과징금 22억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처벌이 약하다며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바뀐 공정거래법에 따라 검찰이 고발 요청을 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무력화돼버린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해 공정위 관할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공정위가 책임지고 고발 여부를 판단하라는 것이 전속고발권이다. 이 권한이 때로는 논란도 불러일으켜 공정위는 내부기준에 따라 계량화된 지표를 두고 고발 여부를 결정해왔다. 전문가 조직의 행정위원회 판단을 검찰이 뒤엎은 것이다.

‘경제민주화법’으로 조달청 중소기업청 감사원도 지난해부터 고발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불공정하도급 거래를 했다며 중소기업청이 고발한 기업만 5건이나 된다. 모두 공정위의 행정처분이 내려진 사안이지만 요청이 있으면 공정위는 무조건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이번에는 검찰까지 가세했다. SK건설 담합건에서 추가 혐의가 나왔다면 형법이나 건설산업기본법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무고발제를 발동한 것은 과잉 처벌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경쟁을 가로막는 담합은 근절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중삼중의 처벌, 경쟁적인 징계여서는 곤란하다. 자칫 일사부재리 원칙이 깨질 수도 있다.

국가기관들이 고발권을 남발할 소지가 많다. 고발요청권이 명문화된 법만 공정거래법 외에도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표시광고법 대규모유통업법 등 5개나 된다. 집행을 형사처벌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치명적인 법들이다. 전속고발제를 채택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기관들이 징계와 처벌을 경쟁하는 형벌국가로 가는 것인가.

기업활동을 범죄화하는 법률들 판친다

국가에 의한 과도한 처벌은 기업활동의 대부분을 예비 범죄 목록으로 만드는 국회의 과잉입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제활동을 상법이 아닌 형법의 영역으로 규정해 지나친 규제와 처벌의 칼을 휘두르게 만든 것이다. 민간계약이나 행정규제 위반조차 과태료 대신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물리는 게 보통이다. 예컨대 원청기업이 하도급 사업장에 안전조치 미비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기업이 사업보고서에 개별 임원 보수를 잘못 기재해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형이다. 과태료나 시정명령으로 충분할 것을 기어이 전과자로 만든다.

이 같은 과잉범죄화로 인해 무려 1100만여명이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전과자가 됐다. 15세 이상 인구 4명 중 1명꼴이고 행정범죄자가 70%에 이른다. 형벌조항을 포함한 법률이 2012년까지 약 700개, 벌칙조항이 5000여개였다는 게 김일중 법경제학회장의 조사였는데, 지금은 훨씬 늘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검찰청 ‘범죄분석’에선 범죄 유형이 너무 많아 134개 법률에 대해서만 범죄통계를 낼 정도다.

문제는 현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에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징역·벌금형 등 과잉범죄화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사회적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그동안 만들어진 10여건의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이제 본격 발효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법은 법이 예방하려는 8가지 규제 범주에 대해 모두 인신구속형이 강화됐다. 핵폭탄은 후폭풍이 더 무섭다.

물론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 강화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대중의 증오와 반기업 정서를 법제화해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 범죄자로 간주해 처벌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법치가 바로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법 경시 풍조와 경제활동 위축만 초래할 뿐이다. 처벌도 적정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