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선필 홍익대 교수(왼쪽)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입법 지원 효율화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음선필 홍익대 교수(왼쪽)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입법 지원 효율화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급증하는 의원 입법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법안 발의 건수 등 정량 평가에 치우친 시민단체들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의원들이 자신의 입법 실적에 급급해 ‘면피용 법안’ ‘쪼개기 입법’ 등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사무처는 15일 국회에서 ‘의원 입법 지원 효율화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16대 국회(2000년 개원)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는 의원 입법 현황과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한경 특별기획] "의원입법 평가기준 건수→質로 바꿔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 종료가 1년6개월 남은 현재까지 제출된 의원 발의 법안은 1만1697건으로, 18대 국회 총 의원 발의 건수인 1만2220건에 육박했다.

15대 국회 당시와 비교해 의원 입법량은 10배 이상 늘었지만 15대 국회 당시 40.3%에 달한 가결률은 16대 27.0%, 17대 21.2%, 18대 13.6%로 지속적으로 떨어져 19대 국회 현재 9.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시민단체가 의원 의정 활동을 ‘정량평가’로 평가하다 보니 실적을 높이기 위해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19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1만2000건에 달하지만 통과되지 않은 법안이 대부분”이라며 “시민단체나 언론 등에서 단순히 입법 발의 건수 위주로 정량평가를 하니 질적으로 ‘외화내빈’이 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어 “초선 비례대표일수록 법안 발의 수가 많은데 이들은 직능 대표 성격을 띠고 있어 자신들이 담당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데다 법안을 통해 부족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비례대표 의원인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모든 전역 병사에게 300만원의 전역 지원금을 지급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손 교수는 “정부안에 비해 재정 조달 비용이나 사후 평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비판했다.

법안 가결률을 높이기 위해 기존 법안에서 자구만 수정하거나 ‘쪼개기 입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하나의 법안을 시차만 달리 해 쪼개서 발의하는 쪼개기 법안이나 자구 체계만 바꾸는 법안을 20~30개씩 발의하는 것도 의원들이 정량평가를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법제실 관계자는 “‘각출’을 ‘갹출’로 바꾸거나 ‘당해’를 ‘해당’으로 바꾸는 등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고치거나 일본식 표현을 우리 고유 언어로 순화하는 단순 자구 수정안도 많이 발의된다”며 “단순 자구 수정안은 웬만하면 통과되는 만큼 의원들이 법안 통과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의원 입법 가결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의원 역시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 대안으로 현재 2년으로 제한된 국회 상임위원회 임기를 늘려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기르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 기준이 양적 평가에 그칠 게 아니라 질적인 평가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음선필 홍익대 법대 교수는 “의정 평가가 의원 입법 양적 증가의 중요 원인인 만큼 입법 실적, 완성도, 중요도 등 지표를 다원화할 경우 무분별한 입법 발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