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총회를 열어 여야가 재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세월호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는 20일 오후 7시부터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가족총회를 열고 재합의안 수용여부를 표결에 부친 결과 유효표 164명 중 132명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찬성 30명, 기권 2명 등으로 수용 거부가 80%에 달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 처리를 위해 소집된 22일 임시국회 본회의는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희생자 가족들은 변호사와 대책위 임원들로부터 여야 합의안 내용을 듣고 토론을 벌인 결과 유족 대부분이 합의안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가족대책위에 따르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최초의 특별법을 강행해야 한다는 쪽에 13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같은 투표 결과는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한 내용이 빠진 채 특검추천위원회(7명)의 국회 몫 추천위원 4명 가운데 여당이 추천하는 2인에 대해 야당과 유족의 사전동의를 받아 선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재합의안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특별검사 추천권 문제로 좁혀 협상을 벌여온 게 무위로 끝난 것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여야는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해서는 논의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는 특별법을 갖고 와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투표 결과에서 보듯이 지금으로선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가 없는 특별법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투표에 앞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 등으로부터 재합의안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고 2시간여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전날인 19일 재합의안 공개 직후 가족대책위 집행부가 반대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유족 대부분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의 합의영역을 떠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히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유족 동의를 얻지 못해 두 번 연속 불발되면서 유족 설득에 나섰던 새정치연합과 박 원내대표도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박 원내대표는 총회 직전 이곳을 찾아 가족대책위와 면담을 하고 재합의안 수용 설득에 나섰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유가족이 합의안을 거부한 데 대해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여야 간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이 유가족 총회에서 거부돼 안타깝다”며 “이제 파국을 막는 길은 민생법안 우선 처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월호 특별법과 경제살리기 법안의 분리 처리는 세월호 정국의 늪에서 빠져나와 미래로 가는 유일한 출구”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재재협상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다.

재협상안을 거부당한 새정치연합은 21일 의원총회에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남아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박 원내대표는 재재협상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유가족의 뜻대로 재재협상에 나서자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당 지도부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