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인식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제출 여부를 23일에도 결론짓지 못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물밑에서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압박하고 있지만, 문 후보자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집무실에 머물렀지만, 거취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문 후보자는 출근길에 “오늘 아무 할 말이 없고,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만 했고, 퇴근길에는 국가보훈처에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인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여 권에서는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문 후보자의 사퇴를 권고했지만, 문 후보자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 후보자 입장에서는 자진사퇴하면 역사인식 논란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재가하지도, 지명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이후 임명동의안 재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귀국 3일째인 이날까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순방 이후 처음으로 공식일정을 소화했지만, 문 후보자와 관련한 발언을 하지도 않았다. 신임 국가안보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하면서도 “인사청문회도 있고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나와 있는데, (국회와의) 협력을 통해서 속히 잘 이뤄져야 국정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발언만 했다. 민 대변인은 “문 후보자와 관련해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지명을 철회하면 인사 실패를 자인하는 게 되고, 임명동의안을 재가하면 문 후보자를 고집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기다리며 여론동향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를 주재할 계획이었지만 정홍원 총리에게 맡겼다. 이는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다는 방증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분석이다.

새누리 당 지도부는 문 후보자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지만, 당권주자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유력 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문 후보자는 청문회 전에 사퇴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후보자 자신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게을리해 전선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갔다”고 지적했다. 다른 유력 주자인 서청원 의원은 앞서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김태호 의원은 “이렇게 여론몰이식으로, 마녀사냥식으로 낙마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결코 좋은 선례가 못 된다”고 문 후보자를 지지했고, 홍문종·김영우 의원 역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 후보자와 박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