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부채 감축을 위해 내놓은 대규모 자산 매각 계획을 놓고 벌써부터 '헐값 매각'과 '특혜 시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선 경기가 좋지 않은 현 상황에서 수조원대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제값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팔리지도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다수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사옥 부지 등 '알짜배기'로 꼽히는 땅은 대기업과 외국계 자본, 지방자치단체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매각 방식과 매입 주체에 따라 자칫 '특혜 시비'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개별 기관이 제출한 자산매각 계획에 대해 공공기관 정상화 협의회 등에서 실현가능성과 수익 적절성 등을 검토해 매각 방식을 최종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 경기 어려운데 팔릴까…'헐값매각' 우려
부채 감축을 위해 공공기관들은 본사 사옥과 직원 사택 등 '팔 수 있는 건 다 팔자'는 자세로 달려들고 있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은 반드시 본사 부지 매각 계획을 세우도록 한 정부 방침과, 혁신도시 이전 후 1년 안에 의무적으로 사옥을 팔도록 돼있는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라 지방 이전 기관들은 일제히 본사 부지를 팔겠다고 나섰다.

도로공사는 경기 성남에 있는 본사 부지 매각으로 3천억원을, 토지주택공사(LH)는 성남 정자동 사옥과 분당 오리 사옥 매각으로 각각 2천800억원과 3천5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시가 2조∼3조원으로 추산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부지와 양재동 강남지사 사옥 등의 매각을 추진한다.

본사 부지 말고도 시장에 쏟아질 매물은 더 있다.

철도공사는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용산부지를 재매각할 계획이고, LH는 30조원에 달하는 미매각토지를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1∼2년 사이에 대형 매물이 차례로 쏟아져 나오면 제값은커녕 헐값이라도 받고 팔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현재 매각 중이거나 매각 예정인 공공기관 부지는 54곳에 달하는데, 이 중 21개가 이미 3회 이상 유찰된 상태다.

이런 '전례'가 있는데다가, 부동산 경기 위축 상황에서 수천억∼수조원대 대형 매물을 사들일만한 자금력을 갖춘 주체가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공공기관 자산 매각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공기관 부채감축계획 가이드라인에서 '헐값 매각 시비,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제한을 두지 않았다.

부채를 메우는 것이 매각 가격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자산을 급하게 처분하려다보니 가격은 점점 내려가 '헐값'으로 매각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개별 기관들은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등 모든 방식을 동원해 '제값 매각'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는 않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핵심사업을 제외하고 팔 수 있는 자산은 모두 판다는 계획이지만 기대하는 만큼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앞으로 최종 매각까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재환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매각 여부와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 한전 부지 같은 금싸라기 땅은 관심을 받고 팔릴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팔리지도 않고 제값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매각방법·매입주체 따라 특혜시비 있을 수도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 매각에 성공하더라도 매각 방법과 매입 주체에 따라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다.

금싸라기 땅인 7만9천342㎡ 규모의 삼성동 한전 부지의 경우 시가에 맞춰 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자가 드물다.

벌써부터 삼성이나 현대차 등 대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풍문이 돈다.

만약 수의계약 등을 통해 매각이 성사된다면 공공기관의 알짜배기 땅을 넘겨주면서 대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외국계 거대 자본이 부지를 사들이면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먹튀'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다만, 공공기관 자산의 경우 국유재산은 아니지만 준(準)국유재산으로 간주해 국유재산법을 준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매각 방식을 최고가 공개경쟁입찰로 할 수 있어 헐값 매각이나 비공개 수의계약 등 특혜 시비는 수그러들 수 있다.

단순 매각이 아닌 다른 방식이 거론되기도 한다.

한전 부지는 그대로 파는 것보다는 민간 자본을 이용해 개발한 뒤 매각하는 식으로 가격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부동산을 통한 유동화증권 발행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설립 목적과 달리 부동산 개발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부동산 자산 뿐 아니라 국내외 출자지분 등 다른 자산도 매각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질 소지가 많다.

도로공사가 팔기로 한 '휴게시설 운영권'이 대표적이다.

도로공사는 전국 172개 휴게소 운영을 민간에 맡기고 임대료를 받고 있는데, 수익성이 높은 휴게소 운영권을 위탁운영 계약기간이 끝나는대로 차례로 매각할 방침이다.

그러나 공익서비스 기능이 강한 휴게소의 특성상 운영권이 민간에 넘어가면 시민 불편과 지나친 가격 인상 등의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가스공사와 석유공사가 추진 중인 해외자원개발 투자 지분 축소도 자칫하면 '국익 손실'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이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원칙적으로 파는 것이 맞지만, 제값을 받고 매각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국가의 공적 금융기관이 제값에 일괄 인수한 뒤 처분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재환 교수도 "부동산의 경우 정부 기관에서 일시적으로 매입해 가지고 있다가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매각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기한을 정해놓고 빠른 시일 내에 한꺼번에 몰아서 자산을 매각하려다 보면 이익보다 손실이 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연합뉴스) 박용주 차지연 기자 speed@yna.co.krcharg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