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타격 불가피…文 '숨고르기' 후 정면돌파 나설 듯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친노(친노무현) 진영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터널'에 갇히면서 중대 위기를 맞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삭제 지시'했다는 검찰의 15일 수사 결과 발표로 사초 폐기 논란의 덫에 걸려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지면서다.

당초 문 의원이 대화록 공개 주장을 폈을 당시 밝히려 했던 'NLL포기 발언'의 진실도 여전히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대선 패배 후 재기를 노려온 문 의원과 친노 진영이 다시 벼랑 끝에 서게 된 셈이다.

친노 진영은 이날 검찰 수사에 대해 "짜깁기 수사의 정확한 물증"이라고 강력 반발하며 강경대응 카드를 꺼내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자청, "패륜을 저질렀다"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현 정권을 비난했다.

반면 2007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은 말을 아낀 채 공식적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문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대화록이 여전히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검찰 발표가 그것을 인정해준 것 아닌가"라고만 언급했을 뿐 "당과 노무현재단이 대응하는 것을 일단 본 뒤 따로 더 말할 게 있을지 판단해 보겠다"며 즉각적 반응을 자제했다.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가 이뤄진 이날도 대화록 미(未)이관 사태에 대한 유감표명은 없었던 셈이다.

노무현재단측도 "실무진의 실수로 (국가기록원에) 넘어가지 않은데 대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짧게 유감을 표시한 게 전부였다.

문 의원은 일단 상황을 지켜본 뒤 조만간 공식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선 그 시점이 2∼3일 내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 실무 책임자로서 대통령 대화록 미이관에 대해 일정 부분 유감을 표시, 그것대로 털고 가면서도 이와 별도로 검찰수사의 편파성과 형평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 수세 국면을 정면돌파로 탈피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의 명예는 물론 친노 진영의 정치적 운명이 달린 문제이니만큼, 현 정권과 각을 세우면서 참여정부의 명예회복과 지지층 결집을 꾀함으로써 자신과 친노 진영의 입지 회복을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문 의원은 기소 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정치적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처지여서 향후 행보에 두고두고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의원 스스로 지난 7월 예기치 못한 대화록 실종사태를 맞닥뜨린 뒤 "혹여 제가 몰랐던 저의 귀책사유가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장 여권이 문 의원 책임론을 제기하며 십자포화를 퍼붓는 가운데 당내에서조차 대화록 공개에서부터 사초 폐기 논란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를 두고 문 의원을 향한 원망스런 시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문 의원이 이날 미이관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은 것을 놓고도 당내 비노진영을 중심으로 "지도자로서 더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부정적 시선도 고개를 들었다.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노무현재단과 함께 검찰수사 결과에 반발, 친노와 보조를 맞추긴 했지만 이후 대응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향후 여론의 향배에 따라 문 의원과 친노 진영의 앞날이 좌우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 등 야권내 역학구도도 출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hanks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