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법안 발묶고, 핵심 내용 멋대로 수정
해당 상임위원들 '분통'…"권한 제한" 목소리 커져
지난 4월30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계류법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지난 4월30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계류법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19대 국회 들어 ‘입법 홍수’라 불릴 정도로 많은 법안이 쏟아지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법안들에 대한 법체계 검토와 자구 수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일고 있는 법사위 월권 논란도 각 상임위에서 ‘자격 미달’ 법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법사위가 이를 과도하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있다.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여야 환경노동위원들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업체에 물리는 과징금 기준을 ‘기업 전체 매출의 10% 이하’로 정했지만 법사위원들이 이를 ‘개별 사업장 매출의 5% 이하’로 고쳤다.

당시 법사위원들은 “전체 매출의 10%는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고 다른 법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여야 환노위원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법사위가 개정안의 본질적 내용에 속하는 과징금 규모나 도급인의 처벌 등에 대폭 수정을 가했다는 점에서 소관 상임위원으로서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법사위가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묶어두는 경우도 있다.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장을 명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 지방의료원 폐업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반드시 협의를 거치도록 한 ‘지방의료원법 개정안’ 등이 4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계류됐다.

정무위 새누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사위의 권한은 다른 소관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다른 법안에 저촉되는지 등을 심사하는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법사위가 법안의 본질적인 내용에까지 손대고 있다”며 “뜻이 같은 의원들과 국회법 개정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사위가 법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소관 상임위가 이를 재검토한 뒤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사위처럼 특정 상임위에다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을 부여해 ‘옥상옥’을 만들어주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 의회를 보더라도 특정 상임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임의로 수정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법사위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상임위 및 소관부처 간 조정은 전원위원회(committee of the whole) 같은 별도 기구나 본회의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전원위원회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본회의에 앞서 열리는 회의를 말한다. 미국 하원의 본회의 개회 정족수는 218명(재적 의원의 과반)이지만 전원위원회는 100명이면 열릴 수 있다. 해당 상임위는 물론 개별 의원도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고 발언 기회를 신청해 제안 취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이익집단과 행정부처, 상임위 간 의견 조정이 이뤄진다.

이 같은 전원위원회는 이미 우리 국회법에도 2000년 도입돼 시행 중이나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실제 전원위원회가 열린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법사위가 상임위 및 소관부처 간 조정 기능을 맡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법사위의 고유 기능으로 명시된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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