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임기를 마감한다. 대선 패배 직후 ‘멘붕’에 빠진 당을 수습하고자 지난 1월 출범시킨 비대위를 맡은 지 114일 만이다. 이날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는 새로운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5·4전당대회’가 열린다. 비주류의 좌장 격인 김한길 후보와 범주류 측 이용섭 후보가 당 대표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친다.

노무현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의장, 국회 부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5선 의원인 그는 범주류에 속하지만 비주류와도 소통이 가능한 당내 몇 안되는 인물로 손꼽힌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문희상 "남의 얘기 들어준다는 말은 듣기와 수용 다 포함한 것"
우락부락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에다 분석력과 통찰력이 탁월한 덕분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겉은 장비(張飛), 속은 조조(曹操)’다. 문 위원장과의 ‘맛있는 만남’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남도음식 전문점인 ‘대방골’에서 이뤄졌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이 많이 찾는다. 공교롭게도 현관에는 문 위원장과 친분이 깊은 박근혜 대통령의 친필 사인도 전시돼 있다. 문 위원장 역시 비대위 활동을 하면서 이곳에서 수많은 비공식 간담회를 열었다고 했다. 15대 국회에서 낙선한 뒤 술을 끊었다는 문 위원장은 건배를 위해 따른 맥주 한 잔에도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 대신 맨 마지막 코스로 나오는 보리굴비에다 얼음이 동동 뜬 녹차물에 시원하게 밥을 말았다. 몸 속의 독소를 빼준다는 매생이국에도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비대위 활동에 대해 스스로 F학점을 매겼다.

“열심히 한 걸로만 따지면 ‘A++’를 받을 수 있겠지만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다.”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뭔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미 야당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 그게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 박 대통령은 지난해 비대위를 맡아 당헌·당규조차 넘어선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둘렀지만 난 스스로 한계를 정했다. 사실 거기서 벗어나면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오버’가 된다. 그래서 당명도 비대위 마음대로 못 고쳤다.”

▷처음 비대위를 맡았을 때 당 상황이 어땠나.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정치할 때는 국회의원 숫자는 적어도 보이지 않는 국민들의 성원이 느껴졌다. 지금은 정말 싸늘하다. 그래서 더 서러웠고 참기 힘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민주당’이 아니냐는 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박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으로 제1야당을 키워줘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지금 민주당에는 127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60년 전통의 간판값만 해도 엄청나다. 앞으로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국민 신뢰를 회복한다면 아직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희망을 보여준 게 그동안 비대위의 거의 유일한 소득이자 보람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니 안철수 신당에도 지지율이 밀린다.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안철수 신당은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치 무지개와 같은 그 지지율 속에는 ‘민주당 정신차려’란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

▷비대위가 계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계파는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차피 모두가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일부가 뽑혀서 주류를 형성하고 나머지는 비주류가 된다. 문제는 특정 집단이 모두 해먹겠다고 할 때 발생한다. 그러면 독점과 전횡이 일어난다. 계파를 잘만 활용하면 이를 방지하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즉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그러나 특정 계파가 모든 걸 독점하겠다고 나설 때 패권주의가 되고 조직에 마이너스가 된다.”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박 대통령과 함께 민생을 살리자며 새끼손가락을 건 일화가 유명하다.

“그전에 마침 함께 외교통상위를 했는데 해외시찰을 간 적이 있었다. 모로코 현지에서 10월26일을 맞았는데 행사 전 박 대통령을 배려해 오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니 일동 묵념을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나중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고백하더라. 서로 인간적인 신뢰는 갖고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 청와대로 초청받아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땐 무슨 얘기를 나눴나.

“소통하시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경청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들어준다’란 단어에는 ‘듣기(hear)’와 ‘수용(accept)’이란 두 가지 뜻이 있다. 박 대통령은 ‘히어링(hearing)’은 잘하지만 ‘억셉트(accept)’는 잘 안한다. 그러니 불통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게 옳다면 받아들이는 자세다. 이걸 실천한다면 박 대통령은 역사에 빛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민주당 새 지도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혁신해야 한다. 비대위가 이를 위해 법령이나 당헌·당규를 고치는 등 레일을 다 깔아놨다. 새 지도부는 그 위를 과감히 달리면 된다. 두 번째로 이기는 정당이 돼야 한다. 쥐를 잡지 못하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다. 당 대표가 선출된 이후 얼마 안가 10월 재·보선이 있다. 바로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지면 바로 또 책임론에 휘말린다.”

▷민주당이 최근 ‘우클릭’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게 바로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다. 과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꼭 해야 한다고 했던 세력이 지금 와서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헷갈렸다. 제주해군기지를 강력 추진했던 세력이 지금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자연스레 국민 신뢰를 상실했다. 이런 게 문제다. 좌우에 갇혀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20세기 냉전식 사고다.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무서운 편견이냐. 외교 통일 안보 국방에는 여야가 없다. 좌우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런 걸 가지고 우리가 지향할 가치로 삼는 건 안된다. 극좌도 안되고 극우도 안된다. 우리가 갈 길은 중도다. 그러나 정 가운데란 의미는 아니다. 현실에서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문희상 "남의 얘기 들어준다는 말은 듣기와 수용 다 포함한 것"
"안철수 지지율에는 민주당 정신차리라는 뜻 포함"


▷정부조직법 협상을 52일이나 끌었다.

“정부조직법은 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사항이다. 과거처럼 직권상정한다면 또 여야가 죽기살기로 몸싸움해야 한다. 그래서 끝까지 버텼다. 여야 협력의 전례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국회선진화법은 또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옥동자를 낳았다. 청와대와 대통령도 잘 참아줬다. 그래서 4월 국회에서도 정년연장법 등이 원만한 여야 합의 끝에 통과될 수 있었다.”

▷유독 신뢰를 중시하는 것 같다.

“논어에 보면 ‘무신불입’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뢰가 없다면 나라도 없다는 뜻이다. 공자의 수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식량을 충분히 하는 것(경제), 병사를 충분히 하는 것(안보),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통합)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이 중에 무엇부터 버려야 하는지 묻자 먼저 병사를 버리고 다음으로 식량을 버리라고 했다.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금도 이 같은 정치 철학에 변함이 없다.”

▷미스코리아 이하늬 씨가 조카딸인데.

“나를 쏙 빼닮지 않았나.(웃음) 나한테 누이동생이 셋 있다. 하늬는 그중 둘째 동생인 재숙의 딸이다. 지금 노래 강사를 하는데 예전부터 별난 게 좀 있었다. 하늬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엄마를 닮았고 키 크고 늘씬한 몸매는 아버지(이상업 전 경찰대학장)를 닮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일단 한 달은 쉬어야지. 아주 기진맥진이다. (비대위원장에) 내가 갖고 있던 정치적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이제 일개 당원으로서 야당이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가고 싶다. 전국을 다니며 일반 당원과 청년들을 만나며 연수하러 다니고 싶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문희상 "남의 얘기 들어준다는 말은 듣기와 수용 다 포함한 것"

[한경과 맛있는 만남] 문희상 "남의 얘기 들어준다는 말은 듣기와 수용 다 포함한 것"
문희상 위원장의 단골집 대방골 보리굴비·매생이 등 남도음식 전문


솔잎에 쪄낸 보리굴비로 유명한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전남 영광에서 공수해 온 굴비가 손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1년3개월이 걸린다. 조기를 잡아 냉동 보관했다가 해풍에 말리고 다시 냉동 보관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거센 바람에 조기의 내장이 터지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쌀뜨물에 네 시간 담갔다가 건져낸 굴비를 솔잎 레몬 생강 무 다시마 등을 넣고 찐다. 이렇게 요리한 굴비를 살만 발라내 접시에 담아낸다. 녹차물에 만 밥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맞다.

대방골은 24년 전 대방동에서 문을 연 뒤 7년 전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최근 들어 여의도공원을 넘어온 증권맨들도 많이 찾는다. 보리굴비 외에 매생이 낙지 전복 등을 재료로 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

가장 잘 나가는 솔잎굴비정식과 매생이굴비정식의 가격(괄호는 점심특가)은 각각 4만5000원(3만8000원)과 5만2000원(4만5000원)이다. (02)783-4999

김재후/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