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벌인 여야의 대립이 지난해 통과돼 시행 중인 국회 선진화법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 법에 따라 여야 합의 없이는 사실상 어떠한 법률도 통과시킬 수 없게 돼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제도화됐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하면서 불거졌다. 작년 5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도입된 안건조정위는 의견 충돌이 심한 쟁점 법안을 다루기 위해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기구다. 법안이 안건조정위에 회부되면 최장 90일간 논의해야 하고, 새누리당 단독으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 과반 의석(152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과거처럼 단독 처리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확대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부 정당이 지나치게 소수 지지 기반의 이익을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고 인사청문회법상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가 너무 빈번하다”며 “이것이 되풀이되면 선진화법이든 인사청문회법이든 개정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반발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이 법안을 주도해 통과시킨 분이 바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며 “이제 와서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이를 개정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주 맞짱토론은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란을 두고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문병호 민주당 비대위원이 각각 찬반 주장을 펼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찬성 소수당 '국정 발목잡기' 빈번…국회 파행에 잠자는 안건 많아

지난 18대 국회는 미디어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쟁점 법안과 예산안 처리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회의장 점거, 몸싸움, 폭력 사태로 인해 ‘의회정치 실종’ 사태를 초래하면서 여론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국회 파행과 대결의 깊은 상처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를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국회선진화법이 탄생했다.

국회선진화법 주요 내용 가운데 주목받는 규정은 안건조정위원회다. 쟁점 법안에 대해 상임위원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1의 요구로 만들어질 수 있으며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장 90일까지 안건을 논의한 뒤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악용하는 사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나타났다. 민주당은 원안 처리를 요청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압박하기 위해 지난달 13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던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안건조정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정부조직법 처리를 3개월 뒤까지 미루고 싶지 않으면 야당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에 협조하겠다던 민주당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표류했고, 이 때문에 내각 구성조차 마치지 못해 정부의 국정 파행이 계속됐다.

이렇듯 국회선진화법에 근거한 안건조정위 발동은 소수당이 국회 의사진행의 키를 움켜쥐고, 사안의 시급성이나 중대성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돼버렸다.

안건조정위 與野 동수는 헌법 ‘다수결 원칙’ 훼손

선진화법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 처리 당시 격렬한 진통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바로 지금 국회처럼 소수당의 반대로 국회의 의안처리 기능이 마비되는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법 개정 후 1년 남짓 지난 지금 그것은 현실이 됐다. 국회선진화법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주권재민의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 동수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다수당이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수당과 소수당은 국민이 정해준 것이므로 국회의 모든 위원회는 의석 수 비율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여야 동수로 구성하도록 하는 것은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둘째, 소수당의 발목잡기를 법제화한 법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수의견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소수에 의해 국정이 좌우돼서는 안 되며, 이는 존중이 아닌 소수의 횡포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고,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돼 있다. 여야 동수로 구성한 안건조정위에서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의결이 되지 않으면 다시 소위원회에 회부해 논의하도록 하는데, 과연 소위원회에서 논의와 통과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만일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통과된다 해도 법사위에서 1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소관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의 의결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가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이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본회의 부의는 불가능해져 소수당의 발목잡기를 법제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셋째, 다수당에서 추진하는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신속처리대상 안건지정 제도를 만들었지만 그 요건이 엄격해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 안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재적의원 과반수의 서명으로 지정요구 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5분의 3 이상, 즉 180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는 다수당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힘든 요건이다. 어렵게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됐다고 해도 법상 규정된 기일을 보면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이내로 돼 있어 최장 330일 이상이 소요된다. 신속처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넷째,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다수결 원칙을 부정한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고, 이것이 안 되면 표결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표결은 헌법 제49조에서 과반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국회법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은 절대다수를 요건으로 하는 것으로써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회법에 새로 도입된 제도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안건조정위원회 제도와 신속처리대상 안건지정 제도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소수당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고, 신속처리대상 안건지정 제도는 다수당의 신속한 법안처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수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무작위로 발동할 수 있어서 법으로 소수당의 횡포를 인정한 꼴이 돼 버렸다. 또 다수당이 추진하는 정책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신속처리대상 안건지정 제도는 그 요건이 너무 엄격해 제도를 활용할 여지가 전혀 없다.

‘안건 신속처리제도’ 요건 복잡…개정해 국회 정상화 이뤄야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치권 일각에선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진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국회선진화법을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당내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법의 정착을 위해 여야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선진화법 개정에 반대한다. 모두 경청할 만한 지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는 이상을 추구하되 분명히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개정된 법이라도 현실적으로 추진할 동력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지금 우리 정당정치의 현주소는 ‘소수 야당의 횡포’에 의해 국회가 혼수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끌어안은 채로 소수 야당의 선의만을 기대하면서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되고, 소수의견도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폭력국회를 막기 위한 것이지,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소수에 의한 국회 장악을 보장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협상의 정치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되 현실의 ‘정치’를 정상적으로 하려면 국회법의 재개정은 불가피하다.

반대 다수당의 일방통행 차단 장치…타협으로 '희망의 정치' 일궈야

18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두고 여야 간 장기간의 대립과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의사당에는 소화기 분말가루가 날렸고, 본회의장 안에선 최루탄이 터졌다. 곳곳에 해머와 소화기까지 등장하면서 의사당의 출입문이 부서지고 유리창이 한 장, 두 장 깨졌다. 본회의장 안에서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 경위에게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몸에 등산용 자일을 둘렀고, 여야 의원들은 서로 의장석을 점령하기 위해 멱살잡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국민 앞에 부끄러운 전쟁터였다.

이 사건이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약칭 선진화법이라고도 하는 ‘국회법 일부개정법안’은 첫째,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둘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안건을 심의하며 셋째, 소수 의견도 개진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여야는 과거 날치기 처리의 상징이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원내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로 제한했다. 또 본회의에 직권상정될 수 있는 법안 또한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또 물리적 대립이 아닌 토론과 타협이 가능하도록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허용하되 일정한 요건을 갖춰 이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보완책도 마련했다. 더불어 쟁점 법안의 발 빠른 처리를 위해 ‘안건 신속처리제도’를 도입해 특정 안건이 기약 없이 지연되지 않도록 했다. 다만 신속처리제도가 과반 다수당에 의해 남용되지 않도록 의결 요건을 국회 관례인 50% 이상 찬성에서 60% 이상 찬성으로 강화했다. 그리고 이 법안을 여야 간 대타협을 통해 작년 5월 2일 재적의원 192명 중 127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몸싸움 국회’ 막기 위해 도입…지난 총선 때 朴대통령도 찬성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는 공포된 지 10개월 된 국회선진화법의 첫 시험대다. 그런 만큼 여야는 선진화법이 만들어진 계기를 교훈으로 삼고, 법률의 도입 취지를 가슴에 새겨 폭력과 점거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상황은 녹록지 못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제대로 시행도 못 해 본 선진화법 개정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불거진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대화와 타협이 중요해진 지금의 변화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그 근거가 되는 정부조직법 개정은 국회의 권한이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은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여당과 긴밀히 협의했고, 야당에 미리 개편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또 대통령이 ‘타협 불가’를 외치며 원안 사수를 고집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직권상정을 운운하는 단계까지 갈등이 불거지지도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동력자원부(지금의 지식경제부)를 폐지하려 했다가 야당의 반대를 받아들여 이를 철회했다. 김대중 정부도 기획예산처 신설을 주창했지만 신한국당의 반대로 그 계획을 접었다. 노무현 정부는 아예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지 않아 여야 간 큰 충돌 없이 정부조직법이 통과됐으며, 이명박 정부 역시 여성부와 통일부를 폐지하려다 민주당의 반대를 수용해 이를 그대로 존치시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야당에 설명을 생략한 채 일방적인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보해 놓고선 원안에서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박 대통령의 이런 아집으로 인해 정부조직법이 정부 출범 후에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선진화법 체제에서 대통령이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의 싫은 소리도 진지하게 듣고, 필요하면 자신의 국정 구상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포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여당에 대해 야당과의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재량권을 주고, 동시에 불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권위주의 체제의 산물인 ‘하명 정치’ ‘리모컨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굳건히 해야 한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갔다. 인수위 원안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해 새누리당이 야당과 타협할 수 있는 재량권을 없앴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야당과 대립해 새누리당이 집권당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당연히 여당 내부에서도 ‘책임 있게 야당과 협상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야 하지만 오히려 충성파들이 앞장서서 선진화법 개정론을 들먹이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은 국회 권한…파트너십 인정해 정치력 키워야

사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승리를 거두자 당내에서 선진화법 불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선진화법을 꼭 처리해야 한다”며 교통 정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타협 없는 정치, 소통하지 않는 국정을 강행하며 선진화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이 난항을 겪은 것은 선진화법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의 독선과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금단 현상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바로 이 낡은 정치를 쇄신하고, 여야 간의 합의와 대통령의 국회 존중이 바탕이 되는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선진화법을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첫 시험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험을 거부하고 판을 깨버리려 하는 것은 ‘몸싸움 국회’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이는 정부조직법을 두고 벌였던 갈등의 원인을 협상력의 미약, 소통정치의 부재가 아니라 법률상의 문제로 치환시켜 버리려는 얄팍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지금 여야는 협상이 아니라 의사당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위헌’ 운운하며 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할 게 아니라 선진화법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내 맘대로식 정치’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만 야당을 국정운영 파트너이자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선진화법 체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다. 정치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선진화법 개정 논란이 아니라 선진화법을 기제로 삼아 서로의 정치력과 협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 읽을 만한 자료

△국회 입법과정의 분석과 개선방안-제18대 국회를 중심으로- (음선필, 홍익법학, 2012)

△국회법, 정치상황, 그리고 국회의장의 리더십 (김민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2012)

△정부와 의회관계 선진화 방안 (김철우·김주찬, 한국행정연구원, 2011)

△국회개혁, 제도 아닌 실천의 문제 (이범래, 국회보,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