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보름이 지나도록 아직 정부가 제대로 구성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과반수 의석을 만들어줬는데 여당은 도대체 정부조직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뭐 하고 있느냐고 나무란다. 방송통신정책을 둘러싼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에 대한 여야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회가 아무런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 국회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18대 국회 마지막에 여야는 국회에서 몸싸움을 근절하고 국회를 선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상당수 국회의원은 식물 국회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반대했다. 그러나 그 당시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 개혁을 둘러싼 포퓰리즘 경쟁을 하고 있을 때였기에 앞뒤 돌아보지 않고 이 법을 통과시켰다.

사실 우리 국회는 여당이 170석 이상의 다수당일 때도 야당이 몸으로 막는 등 떼를 쓰면 어떤 법도 소관 상임위에서 다수결로 통과시키기 어려웠고, 결국 오랜 대치 끝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고 치열한 몸싸움을 거쳐 통과되곤 했다. 그러면 날치기 통과니 여당 독주니 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런 후진적 정치 행태를 종식해야 하는 것이 정치권의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합리적 행동과 크로스보팅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선진 정치로 귀결될 수 있는데 우리 국회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현재 국회 의석 분포는 여당이 겨우 과반을 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상임위원회가 여야 동수이다. 이 상황에선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상임위 논의는커녕 상정조차 되지 못한다. 야당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설사 야당을 어렵사리 설득해 회의를 열어도 여당이 과반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선 야당의 동의가 없는 한 통과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조직법만 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 정책을 기존 방통위에 남겨뒀지만 야당이 계속 반대하는 한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서 통과시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 수단인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도 천재지변, 전시 등 국가 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 외에는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기에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지금 해결 방법은 여당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야당에 양보하든지, 아니면 야당이 좀 더 전향적으로 행동하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 실로 국회 선진화 여부가 국회의원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