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대의 힘…"젊은 시절 낙방이 쓴 약"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에 성균관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 과거 본고사 시절 후기(後期)대학 출신들이 대거 발탁돼 화제다.

새 정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학은 성대. 18일까지 발표된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 24명 중 성대 출신은 6명으로 서울대(7명) 다음으로 많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 후보자 15명 중에선 성대 출신이 전무했다. 일부에선 ‘성균관 스캔들’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이날 발표된 청와대 비서진 4명은 모두 성대 출신이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67학번)과 곽상도 민정수석(79학번)은 법학과, 유민봉 국정기획수석(76학번)은 행정학과, 이남기 홍보수석(68학번)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앞서 내각 인선에서 기용된 성대 출신은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64학번·야간)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77학번)다.

성대 출신의 약진에 대해 당사자들도 ‘의외’라며 놀라는 눈치다. 성대 동문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등에도 ‘환영’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5년 전 내각 리스트에 없던 외대와 한양대도 새 정부에선 각각 장관 후보자 1명씩을 배출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외대 영어학과, 윤성규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들 대학 출신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뭘까. 일단 ‘무(無)연고주의’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 초기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인사’로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과 출신 대학, 출신 지역 등이 같은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박 당선인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맥을 물려받았다’는 비판을 듣기는 하지만 자신이 졸업한 서강대 출신은 철저히 배제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과거 정부의 인사 실패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선 성대, 외대, 한양대 출신 중에 실력파가 많다는 점을 중용 배경으로 꼽기도 한다. 모 대학 관계자는 “성대는 1980년까지 100% 후기모집으로 학생들을 뽑았고 외대나 한양대도 1990년대 초반까지 후기 제도를 유지했다”며 “전기모집에서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이들 대학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당시 성대 법대, 한양대 공대, 외대 영어과 등 일부 학과에는 서울대 시험을 봤다 떨어진 사람들이 대거 지원해 커트라인도 높았다. 황 법무장관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를 지원했다 고배를 마시고 성대로 발길을 돌렸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도 첫 지원은 서울대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기 시험에 낙방하고 후기대학에 들어간 이들 중에 상당수는 독을 품고 공부했다”며 “젊은 시절의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 각고로 노력한 사람들이 장년이 돼 빛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안 사정 탓에 야간대학에 진학한 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정 총리 후보자는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교편을 잡았다가 성대 야간과정을 밟았다. 이번 새 정부 인선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선출된 위철환 변호사도 서울교대를 나와 주경야독으로 성대 법대 야간과정(80학번)을 다니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성대는 1981년부터 전기모집으로 전환했지만 1993년까지는 일부 후기로 모집했고 야간과정은 2003년까지 일부 운영했다. 외대와 한양대는 1993년까지 후기모집을 유지했다.

주용석/이현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