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비리 측근들에 대한 특사를 강행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즉각 이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이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불편한 심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박 당선인 입장에선 민심을 거스르는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이 새 정부 출범에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점을 걱정하고 있다. 때문에 청와대를 떠나는 이 대통령과 들어가는 박 당선인 간의 갈등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MB 비리 측근 대거 풀어줘

이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특사 대상 55명 중 측근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인 5~6명이다. 이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대표적이다. 또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에 연루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도 그렇다. 김연광 전 청와대 정무1비서관도 이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이다.

이 밖에 박 당선인의 측근으로 통하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가 사면됐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박정규 전 민정수석,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특별복권됐다. 정치인 중 야당 쪽에서는 김종률ㆍ서갑원ㆍ우제항 전 의원, 여당 쪽에선 장광근ㆍ현경병 전 의원이 특별복권을 받았다. 경제인으로는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현준 효성 섬유PG장, 권혁홍 신대양제지 대표 등이 특별사면됐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복역 중인 철거민 6명 중 배후조정을 한 1명을 제외한 5명이 잔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씨,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은 대통령 친인척이거나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사 명단에서 빠졌다.

◆불쾌감 못 감추는 박 당선인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에 박 당선인 측이 강력 반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26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특사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이 특사를 밀어붙인 것은 박 당선인의 뜻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당선인 측 핵심 참모는 “특사가 비록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단행해선 안된다. 그런 차원에서 두 번이나 경고했는데, 이 대통령이 듣지 않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박 당선인은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특사 결정으로 집권 초기부터 ‘신뢰와 원칙’이란 정치적 자산을 의심받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게 당선인 측근들의 해석이다. 야당이 박 당선인의 특사 반대에 대해 “양측의 역할 분담이자, 고단수 꼼수 정치”라고 의심하는 것이 그렇다. 고강도 비판을 내놓은 것은 측근비리를 엄단하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통합당 정성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마지막까지 오만과 독선, 불통으로 일관하는 이 대통령의 철면피한 행태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몇 마디 말로 반대했지만 결국 수수방관해 사실상 특별사면을 방치한 박 당선인도 일말의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병석/이태훈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