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복지 예산 97조원 가운데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에 배정된 예산은 20조원. 이 가운데 적자를 자체 재정으로 충당하는 사학연금을 제외하면 공무원·군인연금의 적자를 메우는 데만 3조2800억원이 투입된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특수직역의 노후생활을 보전하는 데 들어가는 셈이다.

양대 연금은 낸 보험료의 1.7배를 받아가는 국민연금과 달리 수령액이 최대 3배 많은 구조를 갖고 있다. 양대 연금의 적자는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해가 갈수록 불어날 전망이다. 그만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커지고 있다.

3일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공무원·군인연금 적자액은 2013년 3조2800억원에서 2018년 8조6000억원, 2023년 15조5000억원으로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불과 10년 만에 재정 부담액이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난다는 얘기다. 2030년에는 30조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복지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실질적 빈곤 개선 효과가 낮은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경직적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빈곤 개선율은 25% 안팎으로 OECD 평균(150%)에 현저히 못 미친다. 고경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재정통계 연구실장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빈곤층 지원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선을 간신히 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행 복지 시스템에서 기득권화한 일부 제도를 손질하지 않을 경우 재정적 문제는 물론 복지 제도 전반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그동안 여러 차례 손질이 있었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미온적 접근과 연금 제도 수혜자인 정부 관료의 소극적 태도로 과감한 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2009년 더 내고 덜 받아가는 방향으로 소폭 개편이 이뤄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근본적 개혁 없이 기존 가입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방향을 고수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복지 예산은 향후 저성장 지속과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부담으로 대폭 늘리기 어렵다.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연금 예산이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제한된 재원으로 복지 수준을 확대하려면 예산 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영준 한양대 교수는 “향후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고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연금 등 현행 재원 배분 시스템을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복지 기득권을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