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순환출자 규제와 관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입장은 ‘신규 순환출자만 규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복잡하게 얽힌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를 강제하면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내놓은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규제’는 공약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 후보의 공약을 총괄하고 있는 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위원장 김종인)는 결국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손을 대겠다는 쪽으로 한발 나아갔다. 방식이 ‘의결권 규제’에서 ‘출자총액제한제 도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출총제는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막자는 의도로 1987년 처음 도입됐다가 1997년 폐지, 1999년 도입, 2009년 폐지를 반복해 왔다. 마지막 출총제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이 순자산의 40%를 넘겨 계열사를 포함해 국내회사에 출자를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행복추진위 관계자는 “출자총액한도를 몇 %로 할지에 대해선 현재 논의 중이며 추가로 검토해 내놓을 방침”이라고 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은 이미 ‘10대 대기업에 대해 순자산의 30% 이내에서 출자를 규제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출자한도가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 관계자는 “10대 대기업의 모든 계열사에 일률적으로 출총제를 적용하자는 민주당 안과 달리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부분 출총제’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기업은 순자산의 일정 부분을 넘겨 출자를 하면 안되므로 사실상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 때문에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보다도 강력한 조치다.

재계에 따르면 이 방안이 실행될 경우 당장 한진 한화 현대그룹 등이 해당돼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나서야 할 전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 현대차는 현재 순자산의 10% 정도만 출자한 상태여서, 출자총액제한 대상으로 전체 계열사를 묶든 순환출자 계열사만 묶든 별 상관이 없는데 한진 한화 현대 등은 계열사 출자한도가 꽉 차 있어 곧바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외국은 가만히 있는데, 왜 순환출자를 규제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는지 모르겠다”며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하자는 것은 기업들의 투자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이와 별도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공약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와 관련, 박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공약이 확정되기까지 다양한 안이 나와 논의되고 있다”며 “아직까진 많은 안 중의 하나로 봐야 하고 공약은 공약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후보가 최종 결정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김재후/김현석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