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직접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를 강탈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신과 인혁당 사건 관련 논란에 이어 과거사 인식 문제가 박 후보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당장 당내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은 22일 CBS라디오에 출연, “헌정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시기의 조치를 두고 정당하다고 하게 되면 끝없는 논쟁을 야기하지 않느냐라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견 내용에 대해서도 “(과거사를) 털고 가려면 주식을 손절매하는 기분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기대와 어긋났다고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이재오 의원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어진 정수장학회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 지난번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어떤 국민이 믿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집권여당 후보가 쿠데타나 유신을 찬양, 옹호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그가 집권했을 때 국민은 독재나 유신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수장학회는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조직본부 발대식 인사말을 통해 “야당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을 하는데 이것으로 무슨 국민 희망을 주겠다는 것이냐”며 야권을 공격했다. 이어 “우리는 국민 편에 서서 변화를 이끌고 정책으로 승부한 정당으로, 언제나 승리했으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다만 최필립 이사장이 사퇴를 거부한 데 대해서는 “이 상황이 사퇴를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의 사퇴를 거듭 압박한 것이다.

이정현 공보단장 역시 “1935년부터 1962년까지 김지태 씨(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소유주)와 관련해 동양척식주식회사 입사, 세금포탈 혐의, 뇌물제공 혐의 등 부정적 행적이 다 보도됐다”며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이 그분의 행적에 대해 지지한다면, 오늘부터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과거사 인식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당내에서는 캠프 의사결정 구조를 전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후보가 소수의 측근들과 상의한 뒤 입장을 정하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인사들의 의견을 듣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한 친박근혜계 의원은 “캠프 내 대부분이 박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며 “일부 핵심 보좌관 등 극소수 측근들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다 보니 민심을 잘못 읽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박 후보의 아버지와 관계된 일이라 조언하기가 쉽지 않다”며 “후보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반대 의견을 내놓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