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식' 폭로에 개인 책 번역 요구도

금융팀 = 국회 국정감사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오류와 허점투성이 국감 자료와 질의가 쏟아지고 있다.

공명심에 사로잡힌 의원들의 한탕주의에다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자료 제출, 언론의 검증 부족까지 겹쳐 나타난 현상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문자료 수백 쪽을 번역해 제출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국회의원도 있어 `의원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 `아니면 말고식' 주장 올해도 반복
국회 정무위원회 조원진(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일 예금보험공사에 대한 국감자료에서 2006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예보의 (퇴출)저축은행 지원금 회수율이 평균 4.8%에 불과하며, 회수율이 해마다 급격히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2006년 40.6%에 달했던 회수율이 2011년 1.5%로 떨어졌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러면서 예보기금 부실을 막으려면 지원금 회수율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퇴출당한 저축은행이 2006년에 단 1곳이었지만 2011년에는 16곳이어서 단순비교가 사실상 어렵다.

저축은행 지원금을 거둬들이는 데는 적잖은 시일이 걸리므로 퇴출은행이 많아진 최근의 회수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는 현실을 간과한 억지 주장을 한 셈이다.

예보 관계자는 "영업정지 후 파산선고를 받는데만 보통 10개월이 걸린다.

절차를 통해 지원금을 회수하기까지는 통상 5∼6년이 걸리므로 최근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지원금 회수율은 낮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통합당 김영록 의원이 제기한 농협 비상임이사 고액연봉도 문제점이 제기됐다.

김 의원은 활동수당 6천만원(특별활동수당 포함), 출석수당 900만원, 국외 연수비용 1천700만원을 합쳐 비상임이사에게 지급된 금액이 연간 8천6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농협 측은 올해 비상임이사에게 특별활동수당 1천200만원이 지급되지 않은데다 이사회 개최횟수도 지난해보다 적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면 올해 비상임사 1명에게 쓰인 돈은 7천300만원이라는 설명이다.

김 의원 측은 "자료 작성 전 농협에 질의했더니 특별활동수당이 올해도 지급될지 모른다고 답변해 이를 포함시켰다"며 "비상임이사가 고액 연봉과 호화 연수를 받은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박했다.

◇검증 부족에다 "500쪽 책자 번역해라" 요구도
피감기관에서 건네받은 국감자료를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은 탓에 잘못된 내용을 사실로 여기게 한 일도 있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상직(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8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액이 10조원에 달한다"이라고 한 부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조 의원은 한국거래소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 4년간 국내 20대 기업의 외국인 배당액이 10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한지주의 배당액이 1조1천억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라고 꼬집었다.

2008년 이후 지속한 세계경기 침체가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세간의 분노를 상기시키는 효과를 거둔 발언이었다.

그러나 신한지주의 실제 외국인 배당액은 조 의원이 주장한 액수의 절반인 5천438억원이다.

우선 한국거래소 자료에 문제가 있었다.

거래소는 보통주와 우선주의 총배당액을 합한 금액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율을 곱해 배당액이 1조1천억원이라는 자료를 보냈다.

문제는 신한지주의 우선주에는 외국인 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거래소와 조 의원측 모두 이를 간과해 오류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1차 잘못은 거래소가 저질렀지만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조 의원도 책임을 면할 수 없어 보인다.

`금융대전(大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은행간 광고전쟁도 올해 국감의 관심사였다.

피겨선수 김연아, 유명연예인 이승기 박칼린 송해씨 등을 등장시킨 각 금융회사의 광고대결은 치열했다.

그런데 국회 정무위 소속 김재경(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금융회사 광고모델료 자료가 사실을 잘못 전달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료 표면상으로는 은행의 광고효과와 모델료의 많고 적음이 비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모델료를 적게 들인 은행의 광고효과가 더 좋은 것처럼 나타났다.

이런 착시는 모델료뿐 아니라 해당 광고가 각종 미디어에 얼마나 노출됐으며 전체 광고비는 얼마였는지를 고려하지 않아 생겼다.

의원들의 무리한 자료요구 `구태'는 올해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지난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경제학자 출신인 한 야당의원이 한국은행측에 500쪽에 달하는 경제 전문서적을 번역해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를 상전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한은으로선 영어에 능통한 젊은 직원 다수를 동원해 밤새워 번역본을 간신히 제출했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갑을관계'를 악용해 개인 편의를 도모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한은측은 해당 의원이 누구냐는 질문에 후한이 두려운 듯 이름 공개를 꺼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는 서로 주고받은 문서 일체를 보내라거나 금융권에 보낸 공문 일체를 제출하라는 `저인망식' 자료 요구가 많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2일 "국감 때마다 같은 내용으로 과거 몇 년치의 자료까지 요구하는 탓에 피감기관이 아닌 민간 금융회사 직원까지 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지새운다"면서 "의원들이 제발 공부 좀 해서 선택과 집중 방식의 자료요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연합뉴스)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