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통화스와프 축소 결정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최근 독도 문제와 일왕 사죄 등을 둘러싸고 양국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언론들이 ‘한국이 굽히고 들어오지 않으면 통화스와프 연장이 힘들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선택지가 좁아졌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양국 간 경제협력이 정치적 문제의 영향을 받는 선례를 남겼다는 측면에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 단기적으로 한국 외환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유사시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도 갈등 부담

정부는 이번 통화스와프 축소에 대해 “순수한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시장 안정과 거시경제 여건 개선으로 통화스와프 연장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모두 정무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초만 해도 통화스와프 연장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지난해 10월 통화스와프 규모를 1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늘릴 때 비록 한국이 먼저 요청하기는 했지만 일본 측도 적극 호응했다는 점에서다. 당시 시장에선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가 500억달러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회동 이후 전격적으로 700억달러까지 늘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일본 측이 거꾸로 이 대통령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유감을 표시하면서 양국 경제 협력의 상징 중 하나인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뀐 것.

◆외환 유동성은 문제 없을 듯

통화스와프 축소에도 한국의 외환 유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통화스와프 축소를 감안해도 한국이 비상시 꺼내쓸 수 있는 외화자금이 4294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중 3220억달러는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이다. 지난 9월 말 기준이며 역대 최대 규모다. 또 중국과의 통화스와프가 560억달러이고 한·중·일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다자간 금융안정 기금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를 통해 384억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2014년 10월 말이며 CMIM은 만기가 없다.

여기에 축소되기는 했지만 한·일 통화스와프도 아직 130억달러가 남아 있다. 이 중 30억달러는 내년 7월 말, 100억달러는 2015년 2월 말 만료된다.

정부는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축소가 외환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예컨대 금융위기 때는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팔고 썰물처럼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뛰는 등 금융시장이 출렁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실제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메가톤급 위기가 다시 닥치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축소가 한국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일본과의 갈등관계가 계속되는 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양국 간 협력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통화스와프 체결 요청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향후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와 관련, 최근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상시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통화스와프

서로 다른 통화를 사전에 정한 환율에 따라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예컨대 한·일 통화스와프의 경우 한국이 원화를 일본에 맡기는 대신 엔화나 달러화를 들여올 수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과 같다는 점에서 한국의 외환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