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사진 왼쪽)은 지난 12일 퇴임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퇴임 후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등으로 여행을 다녀올 것”이라며 “앞으로 월급받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3일에는 신보 임직원들과 송별회를 갖고 짐까지 미리 싸뒀다.

신보 임원추천위원회 역시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등 3명을 최종 후보로 압축해 금융위에 보고했다. 홍 위원이 사실상 내정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청와대의 인사검증까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갑자기 안 이사장이 1년 재연임하는 쪽으로 결정된 까닭은 뭘까. 금융위는 안 이사장의 능력이 검증된 데다 재연임의 경우 제청을 통해 유임이 이뤄지기 때문에 공모 절차를 중단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달 공공기관 평가에서 신보가 기관 평가 A등급(최우수)을 받고 기관장 평가도 B등급(우수)을 받은 점 등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보 안팎에선 금융위가 무리하게 홍 위원을 차기 신보 이사장으로 밀다가 청와대가 제동을 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임추위원은 “3명의 후보 중 금융위 출신을 사실상 내정했다가 청와대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안 이사장의 재연임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사실상 차기 신보 이사장으로 내정됐던 홍 위원이 갑자기 배제된 가장 큰 이유로 지역 편중 논란을 들고 있다. 부산 출신인 홍 위원이 신보 이사장으로 임명될 경우 부산·경남(PK) 출신들이 금융기관장 자리를 독식하고 있다는 논란이 더 커질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달 경남 거제 출신인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6대 금융지주사 회장이 모두 PK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신 회장을 비롯해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경남 합천)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경남 진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경남 하동),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부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부산) 등이 모두 PK 출신이다. 금융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부산·사진 오른쪽)도 PK 출신이다.

신보 노조가 최근 금융당국의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며 반발한 점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신보 노조는 그동안 “금융위 고위 인사를 새 이사장에 사실상 내정해 놓고 형식적인 공모 절차를 진행했다”고 주장해왔다.

금융위는 체면을 크게 구기게 됐다. 김 위원장이 산하기관 인사조차 의도대로 챙기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번 신보 이사장 인선 문제 역시 정권 말 잇따른 공공기관장 인사 파행 중 하나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엔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도 후보자 면접조차 생략된 채 속전속결식 인사가 이어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 5월 예금보험공사 사장 공모에는 지원자가 없어 공모 마감기한을 늦추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공기관장 인선과 관련해 앞으로도 난맥상이 계속 드러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권이 바뀌면 자칫 ‘반년짜리 기관장’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후임자를 찾기 쉽지 않아서다. 집권 초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권)’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현 정부가 정권 말기까지 파행인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