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큰 별 지다…김근태 민주 고문 별세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뇌정맥 혈전증으로 30일 오전 5시31분 타계했다. 향년 64세.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3일이다.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이다. 공동장례위원장은 김상근 목사, 지선 스님, 함세웅 신부가 맡기로 했고 집행위원장엔 장영달 전 의원,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 박선숙 민주통합당 의원이 내정됐다.

김 고문은 지난달 중순 ‘고문 몸살’ 증상에 병원을 찾았다가 뇌 정맥에 혈전이 쌓였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왔다. 혈전을 용해하는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성 반응으로 인한 장 기능 저하로 전날 오전부터 위급 상황을 맞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김 고문은 1965년 서울대 입학 후 20여년 동안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투신, 수배와 투옥을 반복하는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1967년 서울대 상대 학생회장 때 총·대선 부정선거 항의집회를 하다 제적당해 강제 입대했다. 1970년 복학했지만 이듬해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지명수배됐다. 이때부터 1979년 10·26 사태 때까지 도피생활을 하면서 ‘공소외(外) 김근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민주화 큰 별 지다…김근태 민주 고문 별세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시절,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고문은 그의 육신을 무너뜨렸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등에 의해 23일 동안 여덟 차례의 전기고문과 두 차례의 물고문 등 하루 5~6시간의 고문에 시달렸다. 김 고문은 후유증으로 어눌해진 말투와 손떨림 현상,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몸통째 돌려야 하는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수십년째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이면 이런 증상이 심해지는 ‘고문 몸살’에 시달렸다. 부인 인재근 씨가 가수 이미자 씨의 노래 중간에 고문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미국으로 반출해 독재정권의 만행이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민주화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의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다.

김 고문은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역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고문 가해자들에게 어떤 정치 보복도 하지 않겠다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 그의 태도는 여야 정파를 떠나 ‘진정한 신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고문은 늘 ‘저평가 우량주’라는 평가 속에 2002년, 2007년 대통령 경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동영 후보에게 밀려 대선주자의 자리에는 서지 못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도봉갑에서 ‘뉴타운 광풍’에 휩쓸려 뉴라이트 출신의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1100표 차로 석패했다.

일상적인 ‘고문 몸살’인 줄 알고 직접 걸어서 병원을 찾았으나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김 고문이 지난 10일 있었던 막내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져 지인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각계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