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20곳 중 19곳 "北 리스크 최소 1~2개월은 갈 것"
“불확실성 그 자체예요. 북한 리스크가 1~2개월 이내의 단기적 영향에 그칠 것이라고 답하긴 했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20대 대기업의 기획담당 임원은 한국경제신문이 2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인한 북한 정세 급변이 불러온 경영환경 변화를 묻는 긴급 설문조사에 응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예상보다 차분하지만,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 후계체제가 빠르게 안정되기 힘들 것으로 보는 것은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20대 대기업 가운데 13개사는 북한 리스크가 적어도 1~2개월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고 4개사는 3개월 이상, 2개사는 1년 이상의 장기적 영향을 우려했다. 20곳 가운데 19곳이 최소 한두 달은 북한 리스크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외환시장 안정이 1차 관건”

대기업들은 북한 정세 변화가 불러올 구체적인 불안 요인으로 금융·증권시장 동요 와 환율 급등 우려를 꼽았다. 불안 요인 두 가지를 묻는 질문(중복 응답)엔 20개사 가운데 15개사가 ‘금융 및 증권시장 동요’를 우려했고 10개사는 ‘환율 급등’을 걱정했다. 8개사는 정국 불안과 갈등 확산 가능성을, 4개사는 국가 신인도 하락을 염려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금융·증권시장이 흔들리면 불안심리가 확대 재생산되고 국가신인도가 추락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이 급등하면 내년 사업계획을 새로 짜야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만큼 상황이 급반전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1년 이상 장기 영향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70%(14개사)가 김정은 후계체제가 자리잡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답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리스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외국기업,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외국인 투자기업과 해외 바이어들은 대체로 김 위원장 사망이 한국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향후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지역 변경이나 투자 보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레 나온다.

태양광모듈 투자업체인 캐나다 브릿지스톤은 “현재로서는 대한 투자를 지속 추진할 계획이지만,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투자 보류 또는 투자지역 변경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전기초자(NEG)는 “본사에서 여러 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는 파악되지만 아직 별도의 지시는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북한의 돌발행동이 변수 될 것”

불확실성의 핵심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견지하면서 내부 결속을 위해 국지적인 도발을 감행하거나 군부 쿠데타 등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 20개 대기업 가운데 15곳은 권력승계 작업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대북 경제협력이 확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앞서 떠들긴 어렵지만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정부에 북한과 유연한 관계 유지에 힘을 쏟으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정치권에는 소모적 정쟁을 지양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남남 갈등이 없도록 관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북한이 소프트랜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속적인 정보 모니터링과 분석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기업 측에 제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커지는 북한 리스크에도 불구, 대기업의 75%(15개사)는 대북 정보 수집 등을 위한 전담조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수언/이유정/김동욱 기자 sookim@hankyung.com

◆설문에 참여한 기업

△금호아시아나 △동부 △대한항공 △(주)두산 △롯데쇼핑 △삼성물산 △삼성전자△포스코 △하이닉스반도체 △한화 △현대그룹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CJ △GS칼텍스 △LG전자 △LG화학 △㈜SK △STX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