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당신은 볼펜을 돌릴 수 있습니까?
[정규재 칼럼] 당신은 볼펜을 돌릴 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연필을 돌리는 기술을 미국에선 펜 스피닝(pen spinning)이라고 한다. 일본서는 펜 마와시(回し).세계대회도 열린다. 초급에서 고급까지 다양한 기술을 자랑한다. 한국인이 개발한 코리안 백어라운드(korean backaround)라고 불리는 고급 기술도 있다. 한국에서 손가락으로 펜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어김 없이 '78학번 이후'세대다. 이전 세대는 결코 펜을 돌릴 수 없다. 펜 돌리기는 그래서 일종의 구획 기준이며 세대 표지다.

다양한 개인을 특정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은 물론 범주의 오류일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험은 개별화하고 타인의 경험은 일반화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범주화는 때로 특정 집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우리가 386세대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범주의 하나다. 어떤 구획 기준은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68세대라고 하면 1968년 프랑스에서부터 터져나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던 학생운동으로 규정되는 세대다. 사르코지가 '68의 관 뚜껑'에 못을 박겠다고 했을 때의 주인공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최고 번영기에 출현한 좌익이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세대다. 미국에서는 양차대전 전간기(戰間期)에 청춘을 보냈던 세대를 스윙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공황을 견디며 세기말적 춤을 추어댔다.

노무현 시대에 출현한 청년 정치가들을 우리는 '386'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은 40대 후반에서 갓 50을 넘긴 78학번 이후 세대들이다. 이들은 고교 입시가 없어지면서 볼펜을 돌려댔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전두환 키즈(kids)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이들은 5공 치하에서 청춘기를 보냈다. 오늘날 강남좌파라고 불리는 세대의 주력군이 바로 이들이다. 주사파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70년대 민주화 세력과는 구분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넘기 힘든 철벽이다. 안철수가 있고 조국이 있으며 원희룡과 남경필 나경원 등이 있다. 노무현 386들은 도지사와 시장도 배출해냈다. 청와대의 기획 그룹에도 이 세대가 넓게 포진하고 있다. 아니 우리 사회의 주력이요 중심이다. 여야를 넘어 유사한 이념적 색깔을 갖는다. 지금에 와서 한나라당의 이념적 훼절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당내에서 이들 세대의 부상과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체제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체제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위선적이다. 외제차를 타면서 반미적이고,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친북적이다. 악착같이 증권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투기적 이익은 혐오한다. 반시장적이지만 자녀들은 기필코 미국 MBA과정에 보내려고 노력한다. 나의 세금은 감세를, 자기보다 더많은 소득자에게는 증세를 주장하는 모순적 행동을 보인다. 복지국가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선이나 기부에 인색한 것도 유사하다.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해 간부가 되었지만 재벌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을 튀긴다. 강북 집을 두고 굳이 강남으로 전세를 얻어가지만 전교조식 교육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한마디로 이들은 모든 불운을 사회와 구조의 탓으로 돌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사회적 성취에다 이제는 도덕적 평가를 보태고 싶은 서글픈 노력이다.

이들은 가혹했던 군사정권과 광주의 살육과 냉전적 기억의 인질이며 포로다. 고문치사이거나 분신자살이거나 강제입영 외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그래서 처절한 절망이 지배하던 대학가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래서 긍정아닌 부정(否定)이 내재화되었다. 5공과 '87년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요 콤플렉스다! 민주당이 전자라면 한나라당은 후자다. 하나의 잘못된 시대는 이렇게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기억해야 하는 진정한 교훈이다. TV서바이벌 프로에 출연한 40대 전문 심사단이 자기도 모르게 단상에서 볼펜을 돌리고 있듯이 이들은 아직도 그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불혹을 넘겼는데….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