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관 재정비-군 개혁 가속화

봄날의 여유로움이 채 가시지 않은 금요일밤(3월26일), 갑작스럽게 전해진 천안함 침몰사건은 한국인의 뇌리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충격을 안겨줬다.

1천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난 채 서해 바다에 침몰, 46명의 꽃다운 젊은 목숨이 산화했건만 그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 한국인들은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서둘러 나선 수습과정을 거쳐 북한의 소행임이 서서히 드러났다.

북한 잠수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함정을 어뢰로 공격해 침몰시킨 사건은 없었다.

오는 3일로 발생 100일을 맞는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의 정세를 그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시켰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5월20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강력한 응징의지를 천명하며 단호한 대북 조치를 발표했다.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 경협조치가 중단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죄기'가 다각도로 시도됐다.

정부는 또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이끌어 내고자 이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끌고 갔고 현재 대북결의안 혹은 의장성명서 채택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강력 반발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대결상태로 치달았다.

남쪽 내부에서도 논란은 지속됐다.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일각에선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등 천안함 사건의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여전히 진행형인 천안함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한반도가 여전히 남과 북이 대치하는 정전체제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간과해왔던 대북 경계감으로 이어졌고, 해이해진 안보의식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특히 북한의 공격에 무력하게 당한 우리 군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천안함 침몰사고로 우리 군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국방개혁에도 속도가 붙었다.

군 당국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위협 우선 순위를 재조정했고, 북한의 위협이 누그러질 것이라는 전제 아래 수립된 '국방개혁 2020'의 수정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아울러 군의 합동성을 저해하는 '자군 이기주의' 타파와 긴급대응태세 및 보고지휘체계 개선 등도 개혁과제로 꼽히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국회 현안보고 자료에서 북한군의 위협에 대응해 침투.국지도발 위협과 전면전 위협, 잠재적 위협 순으로 군사력 건설 방향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전면전과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비가 군사력 건설계획에 있어 우선 순위였지만 앞으로는 천안함 침몰 사고와 같은 침투.국지도발 위협을 우선 순위에 놓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군의 장기 발전전략인 '국방개혁 2020'도 대폭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 수정 작업을 끝낼 방침이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마련된 `국방개혁 2020'은 오는 2020년께면 북한의 현실적인 위협이 누그러지고 주변국의 잠재적인 위협이 점진적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제 아래 수립됐다.

군은 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 나아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력증강도 그에 맞출 것을 요구해왔다.

해군과 공군이 각각 내건 '대양해군' '항공우주군'이란 모토도 이런 방향성과 무관치않다.

북한의 위협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수립된 이 계획은 천안함 침몰사고를 계기로 현실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의 잠수함과 특수전 등 비대칭전력에 대한 대비를 등한시했다가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군의 긴급대응태세와 보고지휘체계, 정보능력 등 내부 시스템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고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은 1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고 중간부대는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누락했다.

더구나 군 당국은 천안함 사건발생 수일 전부터 북한 잠수정 관련 정보를 전달받았지만, 적정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백승주 박사는 1일 "보고 시스템 등이 군 내부에서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시스템을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의 전력을 극대화하고 위기상황에서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려면 군의 합동성 제고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방부 훈령(제831호)에 의하면 합동성은 미래 전장에 부합한 합동개념을 구현하기 위한 군사력을 건설하며 각 군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통합, 전투력의 승수효과를 극대화해 전승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3군의 합동성을 저해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자군(自軍) 중심주의를 꼽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고 당일 해군 출신인 합참의 한 간부가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 근무하는 해군 상관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결국 청와대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보다 먼저 인지한 것은 모군(母軍) 중심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안보태세 점검 차원에서 위협을 재평가하는 한편 군의 일체화 및 합동성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