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주들과 금강산 관광 사업자들은 "각종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북 정책의 원칙은 지키되 지금보다는 다소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력을 구하지 못해 개성공단 기업들의 설비가 녹슬고,금강산의 부동산이 '몰수'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 기업인은 "속이 탄다"며 지지부진한 남북경협에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31일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 주최한 '북한경제 글로벌 포럼 2010'에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는 안교식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 회장,유창근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부회장,이상만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김규철 남북포럼 대표가 참여했다. 사회는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이 맡았다.

◆김주현 원장=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경협이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규철 대표=현 정부 들어 '퍼주기식 대북 지원은 곤란하다'는 명분 아래 남북경협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협사업이 지난 2년간 단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유창근 부회장=속이 탄다. 주변에서 "아직도 개성공단 사업 하느냐"라는 얘기를 듣는다. 좌도 우도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개성공단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는데,이념적인 오해를 받을 때면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다.

◆이상만 교수=현재 남북 경협의 규모는 연 20억달러 정도다. 1992년 2억달러로 시작해 2007년 18억달러로 늘었다. 그러다 2008년 남북대화가 공식 중단되면서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절대적인 교역량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 중국은 북한과의 교역 규모를 30억달러로 늘렸다. 상대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김 원장=주펑 베이징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중국이 대대적인 북한 관광객 모집에 나섰다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반면 남북이 함께해 왔던 금강산 · 개성 관광은 여전히 풀릴 기미가 없다.

◆안교식 회장=지난달 30일 금강산에서 이뤄진 민간 소유 부동산 실사 작업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분위기는 상당히 결연했다. 사실 지난 2월8일 남북간 금강산 실무회담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북한이 과거와는 상당히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 같다. 이젠 우리 정부와 북측이 남북 교류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대화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사실 금강산 관광 중단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이 관광 재개 여부가 가장 불투명한 때인 것 같다. 여건도 많이 달라졌다. 북한에는 이미 중국이란 대체재가 생겼다. 북한이 이번에 시한까지 정해가며 최후 통첩을 한 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재 정부는 금강산 · 개성공단 등 모든 남북경협 문제를 하나로 연결짓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전반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원칙을 여러 번 천명했다. 하지만 대북 기조의 원칙은 지키되 각 사업에 따라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 원장=개성공단 활성화도 금강산 재개 여부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현재 시점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애로사항은 뭐가 있나.

◆유 부회장=진퇴양난이다. 기업인들 가운데 전 재산을 투자해 개성공단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이미 공장을 다 지어놨는데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당초 공단 내 합숙소를 짓기로 합의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진도가 안 나간다. 합숙소가 안 되면 평양 등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데 이것은 남북한 직원들 간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북한 당국이 꺼린다. 사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처음 들어올 때 인력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고 시설을 과잉 투자한 측면이 있는데 이에 따른 원가 부담이 큰 상황이다.

◆김 원장=인력 문제만 해결되면 개성공단 사업이 2단계,3단계 사업으로 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

◆유 부회장=개성공단에는 통행 · 통신 · 통관 등 이른바 '3통'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이 부분은 기업인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통관 시간도 지금보다 좀 단축시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이 교수=현재 개성에는 4만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가 우리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보면 16만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 기업이 주는 월급을 받고 산다. 개성 인구를 대략 40만명으로 보면 3분의 1이 우리 기업의 영향 아래 있다. 우리 정부는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이 같은 입장 차이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김 원장=천안함 침몰 사고로 남북간 경색 국면이 쉽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김 대표=정부가 먼저 이를 풀기 위한 회담을 선제안하는 게 어떨까 한다. 사실 지난 2년간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북한이 먼저 제안했었다.

◆안 회장=개인적으로 금강산에 투자한 지 10여년이 됐는데 정치적인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 기업인들은 도구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민간 경협과 정치적 부분은 분리해서 대응했으면 좋겠다. 특히 금강산 사업은 민간 기업들이 북한 당국이 아닌 현대아산과 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제도화한 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에서 금강산 투자 기업들을 위해 이 같은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김 원장=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출구를 열어보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많다.

◆이 교수=과거처럼 단순한 대화에서 그칠 게 아니라 패러다임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정상회담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가 있다.

◆유 부회장=남북 문제는 최고 통치자의 의사결정이 없으면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정상끼리 만나 각종 현안을 해결해 준다면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호기/심성미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