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치권 한복판에는 잠복해온 메가톤급 국정개혁 과제가 일제히 던져졌다.

지난 1987년 이후 20여년간 손질되지 않은 낡은 헌법의 개정 문제와 함께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지역감정을 확대 재생산해온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에 대한 개편 과제가 그것이다.

여야 구분없이 개헌, 선거제 및 행정구역 개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각 과제가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는 점에서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게 현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가 크게 부각된데다 이번 한해가 `대형 선거'가 없는 등 여야 모두 당파적 이해를 넘어 이들 과제에 천착,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적기라는 점에서 여권을 중심으로 한 공론화가 본격화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제헌절을 맞아 정치권에 개헌논의를 공식 제안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근원적 처방으로 선거제 및 행정구역 개편을 내놓았다.

특히 개헌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한 `현실성있는 제한적 개헌' 필요성을 밝힘으로써 개헌론의 불씨를 당겼다.

여기에 국회 헌법연구자문위가 대통령 직선제를 유지하되 총리의 권한을 강화한 `이원정부제'와 미국식 순수대통령제 요소를 가미한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복수안을 확정하며 논의의 폭을 좁혔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곧바로 개헌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당 차원의 개헌안 마련에 착수했고, 민주당 역시 "빠른 시간내 개헌안을 확정지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또한 "여당이 손해를 봐도 꼭 이뤄내야 한다"며 선거제 개편의 강한 의지를 밝힌 이 대통령은 직접 소선구제 플러스 중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대안을 제시하며 정치권의 논의를 주문했다.

국회의원이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의정활동에 집중케 함으로써 국가 중대사에 대해 초당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잦은 선거에 따른 소모적 국력 낭비를 피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도.농 복합형 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다양한 선거제 개편방안과 함께 국회의원 정수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역 이기주의를 잉태해온 행정구역을 변경하는데 대해서는 이 대통령과 정치권의 이해가 일치했다.

그동안 `100년간 유지돼온 낡은 행정구역 개편'을 위해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가 가동돼 왔고, 전국의 시.군.구 통합을 내용으로 대동소이한 여야의 8개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나아가 특위가 2014년 지방선거 전까지 기초단체 통합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추진기구를 설치키로 하고, 경남 창원.마산.진해의 행정구역 자율통합이 사실상 확정, 행정체제 개편은 한껏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국회 개헌특위가 현재까지 구성되지 못하는 등 행정체제 개편을 제외한 개헌 및 선거제 개편 등에 대한 정치권의 설왕설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대통령이 개헌과 선거제 개편에 대해 "1년안에 되게 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세종시 문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당면 현안에 밀려 물 밑으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국정 현안마다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는 척박한 정치현실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헌법과 선거제 개편에 대한 합의점 찾기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대선.총선 국면이 본격화, 대권 주자간, 정당.정파간 이해가 날카롭게 대립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정개혁을 이끌기 위한 이 대통령과 여권의 행보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