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미처리속 내일 회기종료..마지막 본회의마저 파행

18대 국회의 두번째 정기국회가 9일로 100일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미디어법 처리 여파로 여야간 극한대치 속에 막이 오른 정기국회는 초반부터 의사일정 문제로 공전을 거듭했고, 힘겹게 정상화된 국회는 `대형 이슈'의 험한 파고로 번번이 요동쳤다.

이번 정기국회는 미니총선이라 불린 10.28 국회의원 재보선을 기점으로 9.3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진행된 전반기, 새해 예산안 및 법안 심의를 위한 후반기로 나뉘었다.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회기 전체를 관통하며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여기에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이 나오며 여야간 충돌은 격화됐다.

굵직한 정치일정이 이어지고 대형 쟁점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18대 국회는 `폭력 국회'라는 오명에 이어 `무위(無爲).무법(無法) 국회'라는 또 하나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특히 한나라당이 8일 국토해양위에서 4대강 예산을 강행 처리한 데 대해 민주당이 강력 반발, 이날 오후 속개될 예정이었던 마지막 본회의마저 파행한 것은 18대 국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이날 총 101건의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절반에도 못미치는 40건의 안건만 통과시킨 채 정기국회의 문을 닫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안건이 법안 4천593건을 총 4천735건에 달하는데 이번 정기국회에 처리된 안건은 고작 165건에 그쳤다.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앞서 지난 2일에도 81건의 안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렸으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단 1건의 안건도 처리 못한 채 유회됐다.

나아가 국회는 `헌법 위반'이라는 구태에서 벗어나는 데도 실패했다.

헌법은 예산안 처리 시한으로 `12월2일'을 규정하고 있지만 국회는 7년 연속 법정시한을 어겼고, 설상가상 여야간 신경전으로 이 시한을 훌쩍 넘긴 지난 7일에서야 예결특위가 정상가동되기 시작했다.

18년만에 가장 늦은 예결위의 예산심사 시작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으로, 그나마 일부 상임위에서는 새해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도 마치지 못했다.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논란이 정치쟁점화하면서 사실상 국회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여권은 자족기능 확충을 위한 수정을, 야권은 원안을 고수하며 입장차를 못좁히고 있고 4대강 사업을 놓고도 한나라당의 `성공적 추진'과 민주당의 `중단 또는 예산 대폭 삭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12월 임시국회의 몫으로 넘겨진 새해 예산안은 연말에나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여야간 반복되는 정치공세로 인해 예산안 및 민생법안 처리는 물론 국정개혁 과제로 제시됐던 개헌, 선거제 개편 문제는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다.

행정구역 개편 문제만 소폭 진전이 있었다.

아울러 당초 국회 폭력근절 및 선진화 등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아 국회의 `자구 노력'도 말의 성찬에 그쳤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기국내 예산이 통과, 서민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랐으나 제대로 안돼 안타깝다"며 "야당은 정략적 발목잡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우윤근 원내 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은 현 정부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며 "반면 여당이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데만 급급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강원택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이번에 국회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정치 쟁점으로 정기국회가 매번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 격돌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예산처리의 법정시한 초과 등에 대해 국회가 비판받는 게 마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회에 예산안 심의의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는지, 정기국회에 너무 많은 일이 몰려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과 검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