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 여수세계박람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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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방문한 도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흡사 병영을 떠올릴 정도로 절제된 공무원들의 복장과 방향성 있는 눈빛에서 긴장감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주쿠 경찰서를 찾아가 보았다. 역시 옛 모습 그대로였다.

일본을 조금은 알고 있는 나를 정작 두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명백히 존재하는 기율이다. 출근길의 신주쿠경찰서 앞은 제복을 입은 경찰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복을 입은 중년의 간부가 긴 방망이를 들고 근엄하게 서 있다. 출근하는 직원들은 이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21세기에 방망이를 든 사복 차림의 문지기.어딘지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현장에서 보면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자신들의 목표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모두가 일체가 돼 전진한다는 방향성을 무언으로 확인하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다. 이러한 국가적 동력이 메이지 유신,서구화,동북아 공영,패망 후 경제대국 건설로 이끈 것이다. 때론 이 동력이 방향을 잘못 잡아 임진왜란,러 · 일전쟁,청 · 일전쟁,중 · 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다시 밖으로 방향성을 갖고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겨우 극복하나 했더니 또다시 밀어닥친 세계금융위기 격랑의 한가운데서 전후 처음으로 뒤로 밀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G2 자리를 중국에 넘겨줬고,휴대폰,TV,반도체 등 일부 제품은 한국에 확실히 뒤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정권을 교체해가며 제2의 메이지유신이란 구호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우리의 긴장은 일본과 달리 외국과의 경쟁이 아닌 국내에서의 제로섬 경쟁이란 점에서,국민의지 결집이 아닌 분열이란 점에서 전혀 다르다. 논란의 핵심인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세계적 관점에서 봤을 때,그리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자원의 투입이란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 결과는 어떠할까. 금융위기,중국의 급부상,두바이 몰락 등이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표출된 경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은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종래 우리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면서 이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저들이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김연아와 같은 스타급 선수가 스포츠에서 승리하고,삼성이 소니를 이기는 작은 현실들이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발전을 위해 변화는 필요조건이고 국민의지 결집은 충분조건이다. 국민에게 이러한 당위성을 이해시킬 구체적인 국민적 목표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칫 잊어버리고 있는 일본의 저력은 신주쿠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신주쿠의 아침 산보는 흐트러진 마음의 구두끈을 다시 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