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 초지일관 확고한 입장이나 열린 자세
한미 일각, `北 남북정상회담 제안' 놓고 논란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최근 공식 브리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8월 23일 북한이 파견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접견했을 때도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일부 국내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청와대는 당시 외교안보수석실 명의의 해명자료를 통해 "이 대통령의 북한 조문단 접견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있었을 뿐"이라면서 부인했고, 이동관 당시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그와 같은 언급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번에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간의 지난 10일 한중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당시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진다면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라면서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를 미국 행정부 쪽에 전달했는데 미 내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두번이나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과 관련한 논란이 발생하다보니 일각에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천기가 누설된 것 아니냐"는 등 우리 정부의 해명을 믿지 못하겠다는 식의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면서 "북한 조문단이 일부 우리측 인사들을 만나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했을 지는 몰라도 이 대통령을 만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남북관계 진전을 희망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살을 붙이고 재해석하다보니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말로 둔갑했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는 일부 우리측 인사들의 말실수도 곁들여진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또 이번에 논란을 야기한 미 국방부 고위 관리의 경우 우리측이 미국측에 전달한 설명을 간접적으로 전해듣다 보니 느끼는 감이 달라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고,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신호를 우리측에 꾸준히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북한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우리측 역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문을 닫은 상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결국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하려 하는 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핵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속셈에서, 또는 식량지원 등 우리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받아내기 위한 임시방편용 전술 차원에서 내놓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측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18일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정략적, 정치적, 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 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남북 정상들이 만날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조건들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대남 적대 정책을 바꾼다는 뚜렷한 동향이 있어야만 남북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것.
특히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는 것은 한미동맹에 엇박자를 내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을 수도 있는 만큼 우리측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중요 이슈로 대두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해서 단순히 남과 북만이 합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상황 인식도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북핵 관련 유엔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주요국들과의 보조, 조율이 이뤄지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져야만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남북관계 진전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서울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추승호 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