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당국자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제의했다고 밝혀 파장을 낳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가 지난 15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한국 일본 등 방문을 설명하면서 최근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사례로 김 위원장의 이 대통령 방북 초청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평양 방문을 꼽으면서다.

청와대는 즉각 반박했다. 정부가 미측에 전한 대북 관련 내용들이 미국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평양 초청 발언 전말

북한이 이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는 발언은 게이츠 장관의 아시아 순방에 대한 사전설명을 하는 자리에서 돌발했다. 미국의 여기자가 "북한 문제에 대해 질문하겠다. 도쿄와 서울에서 할 대화 가운데 어떤 단계를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미 당국자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점쳤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최근에야 북한의 도발국면에서 벗어났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도발)이 우리 행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일어난다고들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제 북한의 그런 활동은 끝나고 갑자기 유화 국면에 들어섰다"며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초청했고 원자바오 총리가 평양을 갔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이 있자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 적절한 경로로 미국 측이 수정 브리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16일 오전(현지시간) 수정브리핑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하는 등 상당한 혼선을 빚었다. 한 · 미 정부 간 조율 부족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정상회담 지금은 아니다

청와대는 특히 "김 위원장이 그런 뜻을 전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남북 정상회담은 아직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18일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며 "그러나 만남을 위한 만남은 안 된다. 특히 정치적 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 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관한한 이같이 일관된 원칙과 민족적 대의에 입각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사 만나자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정부에선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깜짝쇼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측이 정상회담을 검토하고 있더라도 현 단계에선 우리 정부가 덥석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대해선 확고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북측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통한 개방에 나설 때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국제사회의 핵심인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벤트식의 정상회담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북한은 미국과 우리 정부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핵문제에 대해선 진전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설령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시간 내에 성사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홍영식 기자/워싱턴=김홍열 특파월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