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제재 앞두고 남포 출항..상하이서 대형 화물선에 선적
강남1호 '출항-회항' 시기와 비슷


이란으로 향하다 아랍에미리트(UAE) 항만에서 적발된 북한 무기는 지난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 유엔이 대북제재 결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남포항에서 반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무기가 북한을 떠나 이란으로 향했던 시기는 북한의 강남1호가 다른 무기를 선적하고 미얀마를 향했던 시기와도 비슷해 눈길을 끌고 있다.

◇ 유엔 대북제재 결의 앞두고 반출 = 화물 운송을 담당했던 이탈리아 운송업체 오팀(Otim)사 대표와 UAE의 해운업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 경과는 앞서 미국 언론매체들과 외신 등이 보도한 내용과 다소 다르다.

북한 수출용 무기가 이란을 향해 북한을 떠난 것은 지난 5월 30일 남포항에서였다.

같은 달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 제재결의안 작업에 착수, 조만간 북한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예견되던 때였다.

40피트짜리 컨테이너 10대에 담긴 북한 무기는 중국 다롄(大連)항을 거쳐 상하이(上海)항으로 옮겨졌다.

남포∼다롄, 다롄∼상하이 구간은 각각 북한과 중국의 연안수송선이 운송을 맡은 것으로 오팀 대표 마리오 카르니글리아는 전했다.

수송선이 다롄에서 상하이를 향해 출항한 날은 6월 13일이다.

6월 12일(한국시간 13일 새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제재 결의 187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 제재 결의와 상관없이 북한의 무기 운송 작업이 계속된 것이다.

결의 1874호는 무기 수출금지 대상을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에서 거의 모든 무기로 확대하고, 금수 대상 품목을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해서는 공해상에서도 기국의 동의를 얻어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결의 1874호가 아니었다면 북한 무기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이란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UAE 당국에 압류된 북한무기들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공식 확인되진 않았지만 기존 보도대로 로켓추진폭탄과 탄약 등 재래식 무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제재 근거가 희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항로 의문과 강남1호와의 관계 = 북한 무기가 남포에서 상하이로 바로 가지 않고 두 지역보다 북쪽에 위치한 다롄을 굳이 경유한 이유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남포∼상하이 항로를 통해 직접 보낼 수 있고 운송기간도 더 짧은데도 굳이 2개 운송사를 동원하고, 두 항구에 각기 2주일가량씩 화물을 묶어둔 점이 석연치 않다고 해운업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다롄이 북한 화물 반출입의 주요 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적인 항로를 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3국 정보당국의 감시를 피해 북한발 화물이라는 점이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겼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무기가 상하이에서 컨테이너선 선적을 위해 대기하는 사이 때마침 북한의 또 다른 선박 1척이 당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소총, 로켓발사기 등 금수물자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화물선 강남1호가 6월 17일 남포항에서 미얀마를 향해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은 금수물자 선적 선박을 검색할 수 있다는 유엔 결의를 근거로 이지스 구축함을 동원해 선박을 추적했고 강남1호는 6월 30일께 돌연 항로를 변경, 7월 6일 결국 북으로 귀항했다.

당시 개리 러프헤드 미국 해군 참모총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영향력과 지원이 강남1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남1호가 국제사회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안 이란 수출용 북한 무기는 목적지를 향해 순조롭게 운송되고 있었다.

컨테이너선 ANL 오스트레일리아호(4만7천326t급.이하 ANL호)는 북한 무기를 선적하고 6월 29일 상하이항을 출항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남1호와 별개의 사건일 수도 있으나 북한이 의도적으로 강남1호를 출항시켰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강남호에 미 해군과 정보당국의 시선을 집중시킨 뒤 연안수송선과 ANL호를 이용해 실제 무기를 수송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기화물선은 여러 항구를 들러야 하기 때문에 위험성도 있지만, 수백개의 컨테이너 속에 묻혀서 가는 것이어서 오히려 허를 찌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ANL호는 상하이 출항 이후 중국 닝보(寧波), 푸칭(福淸), 샨토우(汕頭), 치완(赤灣), 말레이시아 포트켈랑, 아랍에미리트(UAE) 제벨알리를 거친 뒤 7월 22일 UAE 코르파칸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적인 정기노선 기착지들이었고 이제 북한 무기의 목적지인 이란을 들른 뒤 다시 회항하는 길만 남았다.

그러나 UAE 당국은 ANL호에 북한제 무기가 선적돼 있다며 무기들이 담긴 컨테이너 10개를 압류한 뒤 유엔 제재위원회에 통보했다.

무기 화물의 목적지인 이란 반다르압바스항 입항을 불과 이틀 앞두고 54일간의 항해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컨테이너 처리 어떻게 되나? = 문제의 컨테이너가 UAE당국에 의해 압류된지 벌써 50여일이 지났다.

아직 UAE정부는 압류 사실이나 처리 방향 등에 대해 아무것도 공표한 적이 없다.

그간 내외신 보도는 이런 사실을 UAE정부가 유엔에 보고했다는 점과 일부 관련 정황들을 유엔 측 소스로부터 들어 전한 것일 뿐이다.

이란 정부는 이번에 북한제 무기를 주문한 바 없으며 이 사건을 "시오니즘 언론 등의 음모"라며 부인했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 오팀 사 대표는 정상적 화물이라면 이미 화주로부터 화물 반납 등 조치요구가 있었을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북한 수출인이나 중국 의뢰업체 양측으로부터 아직 아무 질문이나 요구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남은 의문들은 UAE 당국 등의 조사가 더 진행되고 이를 공표해야 풀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UAE 당국은 압류한 무기의 처리 방향을 놓고 유엔 제재위원회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는 압류 당국이 폐기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유엔 외교관들의 전망이다.

(로마.두바이연합뉴스) 맹찬형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