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에 경제학자 출신의 정운찬씨가 지명되고 경제관료 출신의 최경환, 임태희 의원이 장관 후보로 발표되면서 새 내각에는 경제전문가가 부쩍 많아지게됐다.

이처럼 총리와 내각은 물론 청와대 참모들까지 경제 전문가를 대거 기용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과 위기 이후 성장잠재력 확충에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비교적 잡음 없이 움직이던 기존 경제팀에 식견을 갖춘 새 전문가들이 더해지면서 정책조율이나 성향, 의사결정 구도에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사공이 너무 많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선의의 경쟁가 협력을 통한 합리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 정운찬, 정부의 경제 조율 역할 중시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정부가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적정 수준에서 조율을 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를 신봉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서울대 교수,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초대원장, 독일 보쿰대 초빙교수, 미국 하와이대 초빙교수, 영국 런던 정경대 객원교수, 한국경제학회장이라는 이력이 말해주듯 경제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 케인스 이론을 본격 도입한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수제자인 정 지명자는 평소 재벌 비판, 정부의 시장 개입, 구조개혁 등에 대해 소신을 폈고 이에 대한 호응이 많아 정파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입 대상으로 꼽혀왔다.

특히 정 지명자는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양극화에 의한 경제구조 불건전성, 금융의 과도한 대형화, 탈규제화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소득분배 개선과 구조조정, 서비스 부문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해 취임 후 이 부분에 관심을 둘 가능성이 크다.

그는 한국의 경제구조에 대해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불균형이 더해지고 수출 위주의 대외 의존성이 심화되었으며 일자리와 소득이 양극화되면서 가계 건전성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정 경쟁과 시장 자체를 잘 작동하게 하는 금융 규제는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한국은행이 정부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소득 분배를 개선하고 연구개발(R&D), 관광, 의료, 교육 등에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중을 내비쳐왔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가 단기적으로는 정부 경제팀의 리더십 실종과 이로 인해 경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된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어 향후 각 경제 부처간의 조율 및 정책 신뢰성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지명자는 KS(경기고-서울대) 인맥으로 재계에도 적지 않은 지인들이 포진해 있다.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 정문수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강원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 김진만 대성그룹 상임고문 등이 이른바 KS라인으로 꼽히며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재경부 차관,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차장 등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직마다 경제통..불협화음 소지도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뒤이은 이번 내각 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통들이 경제팀 라인의 핵심 요직에 배치됐다는 점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는 30년 넘게 강단을 지킨 소신파 경제학자다.

경제현실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고,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한국은행 총재 제의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 10여년 간 꾸준히 각료 후보로 거론될 만큼 식견도 인정받았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와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도 재무부 관료 출신 현역의원으로서 경제분야의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는 여의도 정가에 정평이 나있다.

앞서 임명된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만수 경제특보 역시 각각 산업자원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이자 대표적인 `MB맨'으로 통한다.

이처럼 총리와 내각은 물론 청와대 참모들까지 경제 전문가를 대거 기용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과 위기 이후 성장잠재력 확충에 그만큼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반면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학자 출신인 총리, 정치인 출신 장관, 대통령 측근인 청와대 참모 등 경제팀 라인에 사공이 많아져 업무 처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출신성분이 다양하다 보니 국정의 우선순위나 처리방식을 놓고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사실상 단일대오가 형성됐던 이전 경제팀과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윤 장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경제팀 라인의 역학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윤 장관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청와대나 총리의 경제정책 조율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합리적 정책 나올 것..기대도 많아

반면 경제팀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앞으로 상호 경쟁과 협력, 견제를 통해 합리적이고 좋은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능력있는 경제학자 출신의 총리와 행정경험이 풍부한 정통경제관료, 민심을 일선에서 체험한 의원 출신 장관 등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정책을 조율하면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새 총리나 의원 출신 장관들이 소신과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무조건 자기주장을 펼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남의 말도 들을 줄 아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제전문가라는 점에서 기존 경제팀과 상호보완적인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새 총리가 시장을 중시하고 경제원리를 강조하는 분이기 때문에 향후 경제 정책에서 많은 목소리를 내겠지만 그 목소리가 흐름을 방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제컨트롤 타워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경제위기에서 신속히 빠져나오도록 지휘한 윤장관 역시 일방통행식 지휘가 아니라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조율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앞으로의 경제팀도 매끄럽게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은 "새로 입각하는 지경부, 노동부 장관 등이 합리적인 성품과 능력을 갖췄고 그동안에도 정부 정책에 대해 맞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도와준 분들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앞으로도 정책조율이 잘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류지복 심재훈 기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