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10.4선언 입장차 극복가능성 타진할 듯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 고위급 조문 사절단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북측 고위 당국자 간 회동이 22일 이뤄지게 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이번 회동은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 행보와 더불어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려는 행보를 잇달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의 핵심 당국자들이 처음 머리를 맞대는 것이란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어떤 논의 이뤄질까 = 이번 회동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양측은 과거 통상적인 남북 당국간 회담을 앞두고 하는 의제조율 등을 거의 못했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북한이 억류했던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를 지난 13일 석방하고 21일부로 육로통행 제한.차단 등을 담은 `12.1조치'를 전면 해제함에 따라 남북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넘어야할 장애물은 거의 없어졌다.

나포된 `800 연안호' 선원들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 역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최근 방북때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이 긍정적인 언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만간 해결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때문에 양측은 남북관계의 핵심 쟁점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에 대한 입장 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정부 공식 특사 파견 또는 장관급 회담 등 정식회담을 통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안에 대해 초보적인 인식을 교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논의 과정에서 북측이 6.15, 10.4선언의 전면 이행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우리 정부도 `두 선언을 존중은 하지만 북핵 문제와 연계해 조건부로 이행한다'는 기존 입장으로 맞설 경우 양측의 논의는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화다운 대화 한번 하지 못한 채 반목과 갈등을 지속해온 남북의 핵심 당국자들이 관계 정상화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교환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실질적인 협의는 소관업무와 직급 등을 감안할 때 현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간에 이뤄질 공산이 크다.

◇회동 성사 안팎 = 북측 조문단에 대남 정책의 실무 총 책임자인 김양건 부장이 포함됨에 따라 우리 당국자와의 면담 성사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북이 남북관계의 선결과제이던 억류근로자 유성진씨를 지난 13일 석방한데 이어 20일 작년 12월 남북관계 1단계 차단조치로 시행한 `12.1조치'를 사실상 전면 해제함으로써 `분위기'를 조성한 점도 면담 성사에 힘을 실은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날 밤 10시께 조문단 만찬이 끝날 때까지 양측은 당국간 회동을 누가 먼저 제의하는지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북측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이날 국회 빈소에서 조문을 한 뒤 우리 측 여야 국회의원, 홍양호 통일부 차관 등을 만난 자리에서 "다 만나겠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적극적인 대화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만찬 전까지 북측은 우리 측 정부 당국자와의 면담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일단 북측 대표단이 구체적인 당국간 회동 제의를 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입장이었다.

서울을 방문한 주목적이 김 전 대통령 조문이며 방남 협의도 김대중 평화센터 측과 진행한 이상 북측이 우리 당국과 만나 전할 메시지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좀 더 지켜보겠다는 속내였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 쪽에서 먼저 회동을 제의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양측은 만찬 직후부터 본격적인 접촉을 갖고 당국간 면담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회동 합의 배경과 관련해서는 우리로서도 북측 대남라인의 핵심인사가 서울에 와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부담일 수 있다는 점, 북도 `통민봉관(남측과 민간교류만 하고 당국대화는 하지 않는 것)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국내 일각의 비난 여론을 불식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좀더 과감하게 풀어나갈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으리라는 점이 거론된다.

한편 장의위원 자격으로 북측 대표단 영접을 맡은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이날 북측 조문단 숙소에 머물며 북측 인사들과 현 장관과의 회동을 실무적으로 협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