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18일 서거 당시 가족과 측근 인사 등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희호 여사가 짠 벙어리 장갑을 끼고 평온한 모습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병세는 전날 밤부터 나빠지다 이날 오전 9~10시께 급격히 악화됐으며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을 안 이 여사는 오후 1시20분께 "하나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저희에게 보내주세요(우리에게 남도록 해주세요)"라며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이어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박지원 안주섭 한광옥 등 측근이 모여 김 전 대통령에게 "사랑합니다"라는 고별인사를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가족과 정치적 동지들의 인사를 모두 받은 지 20분 남짓 후 운명했다.

주치의인 장준 호흡기내과 교수는 "운명하시기 1~2시간 전까지 눈빛으로 가족들과 의사소통이 됐다"면서 "그러나 말로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눈물의 마지막 기도

최경환 비서관에 따르면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가족과 측근 비서진이 중환자실에 모여 임종을 준비했다. 이 자리에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들과 손자 손녀가 함께 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자제분들이 돌아가면서 김 전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어린 손자 손녀도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최 비서관은 "이 여사는 전날에도 마지막 면회를 하면서 대통령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꼭 일어나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드릴 거예요'라고 기도했다"고 설명했다.

가족에 이어 작별인사를 한 측근들은 "여사님을 잘 지켜드리겠다""저희가 잘 알아서 (정치)하겠다"고 말하는 등 한 명씩 김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 전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은 "돌아가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평온하셨다. 아주 편안하게 서거하셨다"고 밝혔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전문의 A씨는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박동수가 점점 느려지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의료원장님이나 병원장님이 병실 참석자들한테 (김 대통령이) 서거하셨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가 흐느끼는 모습을 본 몇몇 여의사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했다고 A씨는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폐렴 증세로 입원한 지난달 13일부터 중환자실에 상주했다는 그는 "며칠 전 심폐소생술을 했을 때도 어떻게든 소생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김 전 대통령을 회복시켜 병실로 올려드렸다면 좋았을텐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서는 없는듯…일기장 남아

박지원 의원은 유서의 존재 여부와 관련,"아직 확인이 안 됐다. 여사님께도 특별히 유서를 남기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잘아시다시피 굉장히 섬세한 분이기 때문에 혹시 생전에 쓰시던 책상이나 서랍 같은 곳에 유서가 있을 수도 있다. 여사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작성해서 보관했는지는 확인이 안 됐다"고 말했다.

측근들도 평소 메모를 잘 하는 김 전 대통령의 성격상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측근은 "아마도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아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전 대통령이 쓴 일기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입원 며칠 전까지 일기를 쓰셨으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일기를 쓰지 못하셨다"며 일기에 유언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어 "혹시 일기에 중요한 말씀을 남기셨는가도 여사님이 챙겨보실 것"이라고 말했다.

서보미/김일규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