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 역할.기능 외면.."원칙.룰 지켜야"

여야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 책임을 외면한 채 비정규직법 개정 협상을 결렬시킨 데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비정규직법 개정 협상 결렬로 당장 1일부터 `비정규직 사용 기간 제한' 규정이 적용되면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이 강제된다.

하지만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 그동안 예고됐던 대량 실업사태가 야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여야가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를 놓고 무릎을 맞대고 진지한 협상을 하기보다는 극한 대결 속에 `네탓 공방'에 열을 올려 `식물국회', `불임국회'라는 오명에 이어 `국회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비정규직 제도의 미비점 보완과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해법보다는 `법시행 유보'에만 매달려왔고, 야당은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반대'로 일관해왔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하루 전인 6월30일 여야의 협상태도는 진정성있는 해법 모색보다 상대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數)싸움'과 `폭탄 돌리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환경노동위를 열어 개정안 상정을 시도한 데 이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민주당은 한나라 단독 처리를 저지하겠다며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실력 대결에만 몰입했다.

더욱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인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극한 대립 속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기력증에 빠진 원인에 대해 국회의원 스스로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에 대한 자각없이 정당 정치에 함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회는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아닌 국민의 국회"라며 "여야가 네탓 공방과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질책했다.

그는 "국회가 폭력과 비타협,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를 이어간다면 국민이 들고일어나 국회 해산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여야 의원들은 지금이라도 한걸음씩 후퇴,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애써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주문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서 "경직된 정당문화가 의원들에게 운신의 폭을 좁게 하고 협상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없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바람직한 국회상 정립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국회법 원칙을 되새겨야 하며, 각 정당도 정체성과 방향성을 재확립해 역할과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제안을 쏟아냈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을 자각하고 국회법에 명시된 원칙과 규칙에 기반하면 된다는 `상식적인' 결론인 셈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국회는 `정치의 장(場)'과 `정책의 장(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비정규직법 협상 과정에선 정책보다는 정치게임에 빠져 입법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의원의 본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며 "국회법이 왜 존재하는지 자각하고 입법기관으로서 결정권을 갖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국회법 원칙과 룰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의 경우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민주당은 정체성 혼란에다 지지층 눈치를 너무 보고 있다"면서 "정당이 위상과 역할을 하루빨리 재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정당이 표를 먹고 사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지지층을 모으는 게 아니라 쫓아가는 것이 문제"라며 "사회적 갈등을 제도권 내에서 풀어주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jo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