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여야대표, 배석없이 1시간40분간 회동

20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의 청와대 회동은 배석자 없이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 40분간 진행됐다.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이처럼 배석자를 모두 물리친 채 오랜 시간 회동을 가지면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뿐 아니라 최근 정국 혼란을 풀어낼 각종 해법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최근 라디오연설에서 "대증요법보다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기회를 봐서 '근원적 처방'의 내용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입장 표명의 형식을 TV 출연을 통한 대국민담화문 발표 형식으로 할지 여부 등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 초반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맹형규 정무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대변인, 한나라당 김효재 대표 비서실장과 조윤선 대변인, 선진당 임영호 총재 비서실장과 박선영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그러나 회동 시작 5분 만에 김성환 외교안보 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배석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김 수석도 한미정상회담 결과만 브리핑한 뒤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회동한 것은 지난 4월6일 여야 3당 대표 회동 이후 두 달여만이다.

다만 이번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불참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9시58분께 청와대 백악실 앞에서 박 대표와 이 총재를 직접 맞이했다.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눈 이 대통령과 박 대표, 이 총재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화에 들어갔다.

먼저 이 총재가 한미정상회담 일정이 빡빡했음을 거론하면서 "단기간에 (다녀오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건넸고, 이에 이 대통령은 "(일정이) 2박 4일인데 비행기 안에서 자니까 3박 4일이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 역시 "(일정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했지만, 이 대통령은 "그래도 끝나고 바로 와야 한다.

12시에 석학들 얘기 조금 듣고 오후 2시에 끝나고 3시 비행기로 왔으니까"라고 답했다.

이어 이 총재는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겠다"고 염려했고, 박 대표도 "연속으로 정상 외교를 하시니 건강이 얼마나…"라며 이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래도 공식적으로 해야 할 스케줄이 많으니까"라며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회동에서 이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 이회창 총재는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 총재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이 대통령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희태 대표는 주로 이 대통령과 이 총재의 대화를 경청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초 1시간 가량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회동은 100분 정도 진행됐다. 특별한 다과가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커피가 두차례에 걸쳐 회동장소인 백악실로 들어갔다.

이 대통령이 먼저 한미 동맹관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등 한미 양국 현안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이 총재가 "국민들이 `근원적 처방'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국내 문제로 화제를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 혼란과 경제위기, 안보위기 상황에서 국회마저 장기 표류하고 있는데 대한 우려표명과 대책논의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개각이 점쳐지는데 대해서는 "장관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국정운영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면 전환용 개각에 대해 다시 한번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대통령이 한미외교와 국내 현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이 총재는 "현 정국 상황과 관련해 국민 앞에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담화를 빨리 발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현상황에 대해 `근원적 처방'이라는 얘기는 평소 고민하던 것을 내놓은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더라"며 "한번 기회가 닿으면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혀야 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국회문제에 대해서도 "국회가 빨리 열려 현안들이 처리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총재는 특검 및 검찰개혁특위 도입, 여당의 성의있는 설득 노력 등을 주문했다.

앞서 이 총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FTA 문제에 대한 언급한 대목을 직접 영어로 소개하면서 "왜 청와대와 외교부가 사실대로 얘기를 안하고 진전이 있었던 것처럼 밝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배석자없이 이뤄진 회동 직후 브리핑 내용을 놓고 청와대와 자유선진당 사이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총재로부터 회동 내용을 전해들은 박선영 대변인이 한미 정상간 아프가니스탄 파병문제가 논의됐다고 공식 브리핑을 했다.

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이 자진해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전투병력 파병은 불가능하고 평화유지군 형식으로 파병하는 것은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이 대통령의 발언 진위를 놓고 논란이 일자 이날 회동 녹취록까지 공개하면서 "한미정상회담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는 사실상 거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측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회동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정치 현실에 비춰볼 때 파병 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결정해주면 모르지만..'이라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오히려 조금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전(前) 정부 때 평화사업과 재건사업을 조금 확장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측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파병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고, 평화사업은 농업지원 등을 말하는 것인데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측은 자유선진당측에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으며 자유선진당측은 이 대목을 제외시킨 회동 결과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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