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지난해 말 구속되면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가 서울 여의도 정치권을 강타했다.

박 전 회장이 오랜 기간 자신의 필요에 따라 `힘'을 가진 인사라면 누구에게나 접근해 금품을 뿌렸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퍼졌기 때문이다.

떠도는 리스트만 해도 `국세청판', `여의도판' 등으로 다양해 국회의원들의 무더기 형사처벌을 불러올 태풍에 비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돈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故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따른 조기 수사 종결과 사법처리 요건의 미비 탓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불기소됐으며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았던 상당수 인물은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검찰청 중앙수사부의 6개월여에 걸친 수사로 박연차 리스트는 일부 사실로 드러났지만 이름만 오르내리다 결국 허위로 밝혀지거나 금품을 받았지만, 형사처벌의 요건을 피한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박 전 회장한테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언론에 실명으로 보도됐지만, 소환조사는커녕 내사조차 받지 않은 인물도 허다하다.

지역구가 부산ㆍ경남이라는 이유로 박연차 리스트에 포함됐던 한나라당 허태열, 권경석, 김학송 의원과 권철현 주일대사는 수차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지 않았을 뿐더러 소환 통보도 되지 않았다.

이 중 일부 인사는 실제로 박 전 회장이 건네려고 했지만 `배달사고'가 나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 검찰은 결론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도 박 전 회장과 친분이 깊은 사이로 알려져 구여권 인사와 박 전 회장의 연결고리로 의심을 샀으나 금품수수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배기선 전 의원도 언론에서만 `의혹의 인물'로 거론됐을 뿐이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박 전 회장과 관련한 따가운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김성호ㆍ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언론의 지목을 받았지만, 금품수수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검찰이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김만복 전 원장은 노건호씨가 미국에서 살 집을 알아보는 데 간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한 차례 소환조사를 받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물인 안희정씨는 박 전 회장에게 상품권을 받은 게 사실로 드러났고 자신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으나 수수 당시 피선거권이 없던 상황이어서 검찰은 이를 불법 정치자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식구 감싸기 시비를 피하려고 고강도 수사를 벌여 관심을 끌었던 민유태 검사장도 형사처벌은 모면하게 됐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금품수수 사실이 있으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내사종결했다고 밝혔기 때문. 민 검사장은 소환조사 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인사조치됐고 검찰은 법무부에 징계를 청구할 방침이다.

부산고법 박모 부장판사도 받은 금품이 직무와 무관하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하는 한편 12일 대법원에 비위사실을 통보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박 전 회장에게 50억원을 전달했지만 돈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은데다 불법 거래가 증명되지 않아 내사종결 처분을 받았다.

태광실업 세무조사 대책회의와 관련, 박 전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이 실제 관여했지만 금품을 받은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고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회의에 참석하거나 비서관 재직 시 뇌물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소환조사를 받은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금품수수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는데다 주요 참고인이 국외에 있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중수부는 밝혔다.

결국 올해 상반기 여의도 정치권 등을 뒤흔든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면서 대다수 인사가 명예를 회복하거나 가벼운 처벌만 받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