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3~4일 전부터 신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이상 행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비극적인 결말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 측근들과 지인들의 슬픔과 회한은 더욱 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4일 전인 19일 오후 5시께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취재진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외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평소 즐겨다니던 자전거 코스는 마을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봉화산 자광사를 지나 화포천,자암산 영강사,한림면사무소까지 이르는 5㎞ 구간.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은 영강사 주변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일찍 귀가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과 가까이 지냈던 영강사 청호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 통학할 때부터 이 길을 걸어다녔다"면서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리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회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강사와 5분거리에 있는 자광사를 지나던 노 전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말없이 절을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목격한 자광사 정일 주지스님은 "노 전 대통령이 손짓만 하고 그냥 갔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날 때 절에 들러 하천 정화운동 등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고 한다.

투신 3일 전인 20일 밤에도 노 전 대통령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였다. 이날 밤 노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1년 후배인 진영농업협동조합장 이재우씨(63)와 통닭을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 조합장이 사저를 방문한 것은 지난 17일 봉하마을을 찾아온 한 여성 자원봉사자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독한 마음을 먹을까 염려된다. 만나면 그런 생각하지 말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전해 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며 사저로 전화를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일 오라고 해 오후 6시께 통닭 두 마리와 소주를 사 들고 사저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재우야 왔나? 잘 지내나"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이날은 초췌한 얼굴로 통닭을 입에만 댄 뒤 연신 담배만 태웠다고 이 조합장은 전했다. 그는 "그때는 누구와 대화하기도 싫어하고 대화를 해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주 수척했다"고 노 전 대통령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 조합장은 술잔을 건네면서 "독한 마음 먹지 마세요. 자신을 생각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잘 살아온 것"이라고 위로했다. 사저를 나오면서는 "낮에는 기자들이 있으니 새벽이나 밤에 저하고 등산을 하십시다"라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말들에 대해 평소와는 달리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이 조합장을 계단까지 내려와서 배웅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 조합장의 손만 꼭 잡았다. 이때 이 조합장은 노 전 대통령 손에서 과거의 따스한 온기는 간데없고 섬뜩한 냉기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 조합장은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 적은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말을 당시에 들었다며 이미 그때 죽음을 결심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내 정보 담당 부서에도 몇 주 전부터 노 전 대통령 행동이 이상하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왔다. 집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만 있으려 한다거나 측근들이나 비서관들과의 대화를 기피한다는 내용들이었다. 대검 정보팀의 한 관계자는 밥을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을 정도로 식욕을 잃은 상태였고 우울 증세가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전했다.

봉하마을=신경원/김태현/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