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조사가 끝나고 20여일 만에 '자살'을 선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더 이상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꽉막힌 상황의 탈출(escape),자신과 주위 사람에 대한 분노와 속죄의식 등 복합적인 심리가 작용해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진단했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 정신과 교수는 "통상 현실적 고통을 벗어나거나 자신의 무죄 주장,대의를 위해,신체적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면 속죄('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분노('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현 상황에 대한 탈출('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등 복잡한 심리가 작용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원망하지 말라'는 것은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스스로 종결한다는 의미와 종결돼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승철 새마음 알콜 클리닉 원장은 "수사가 어떤 식으로 결론나든,한평생 자신을 지탱해 온 정신적 자양분이었던 '청렴'과 '도덕성' 이미지 훼손이 불가피해지자 극심한 상실감에 빠져들었고, 결국 검찰과의 법리논쟁을 스스로 포기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단순한 우울 증세가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 변화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이라며 "'타고난' 자존심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자존심이 상한 게 제일 큰 고통을 남겼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남겨진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과 관련해 "부인이나 자식에게 내 탓이라든가,미안하다는 내용을 적지 않은 건 심정적(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쓴 유서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스로 지고 가야 할 짐을 지고 가고,가족에게는 집착하지 않는 비범함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상에 대한 집착이나 억울함 같은 것도 남기지 않고 달관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정신과 교수와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수사 초기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리며 정면대응에 나섰던 노 전 대통령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 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칩거에 들어간 지난달 말쯤으로 보고 있다. 이즈음 노 전 대통령은 끼니도 자주 거르고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무는 등 '우울 증세'가 나타났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초기 영국 유학시절 자신과 조국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큰 고민을 하다 종교를 통해 유연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며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정치 · 이념 지향적인 데다 종교 같은 완충지대가 없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동민 /정종호 /이상은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