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도 무방" 발언 처음..`현금 유혹'보다 `체제 불안'이 큰 듯

북한이 15일 개성공단관련 법규와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일방적으로 새로운 법규와 계약조건을 마련해 시행할 방침을 밝히면서 남측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면 개성공단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공단 폐쇄를 위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음을 드러냈다.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남측 기업이 철수해도 좋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다만 우리 정부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문제 제기를 개성공단 사업 "자체를 파탄시키려는 남측 당국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 행위"라고 주장하거나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더 험악하게 번져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해 폐쇄의 최종 책임은 남측에 전가하려 했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북측은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것을 향해 가겠다는 입장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남한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폐쇄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못을 박아버리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먼저 폐쇄한다고 하면 책임을 덮어써야 하기 때문에 계속 압력을 가해 남한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번 통지문은 남측을 한번 더 옥죄는 조치"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미 4.21 개성접촉 때부터 개성공단에 대한 특혜조치를 재검토하겠다며 남한 당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개성공단 폐쇄 수순을 밟되 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 속에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김영철 국방위 정책실장 등 군부의 개성공단 조사, 상주 인원 축소, 출입 통행 제한 등 폐쇄를 향한 수순을 차곡차곡 밟아왔다.

이처럼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미련을 버린 데는 개성공단이 북한에 안겨주는 한해 3천400만달러의 현금의 유혹보다는 개성공단이 북한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성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발생으로 후계체제 구축이 시급해지는 등 체제안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북한 지배층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은 이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최근 남한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위협 등으로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를 자극하는 언행으로 일관하는 것도 이러한 언행이 가져올 고립화라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인식한 가운데 스스로 고립과 대외 대결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 여건에선 외부 세계와 단절이 체제안정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내적으로 시장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도 단순히 국가상업망의 강화 목적이 아니라 외부 문물의 통로(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복구, 체제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책에 북한 군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대남 교류협력파와 군부간 권력투쟁이 벌어져 군부가 승리한 결과라기보다는,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여건상 외부와 협력을 통한 경제발전 모색보다는 체제안정을 중시하는 논리가 우선할 수밖에 없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현금 수입이 없어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자세에는 최근 교역이 급증하는 북중관계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북핵 6자회담과 북중 양자관계를 분리해 이끌어 가는 가운데 지난해 북중간 교역이 약 40%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앞으로도 개성공단 재협상을 위한 남북접촉의 의제로 현대아산 직원 유씨 문제의 배제 입장을 바꾸지 않은 채 제2차 개성접촉의 무산을 기다렸다가, 개성공단관련 법규와 기준을 새로 정해 남한 정부와 공단입주 기업들에 제시, 수용과 철수의 양자택일 카드로 압박하며 마지막 남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을 고사시켜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이날 공개한 남한 정부에 대한 통지문에서 4.21 개성접촉 이후 지금까지 2차 접촉이 이뤄지지 못한 경위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2차 접촉 결렬위기의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