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놓고 27일 국회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이른바 경제수장 '빅4'가 총 출동,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여야는 기획재정위원회 통과 여부를 29일 결정키로 하고 한은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지는 않았다.

◆금융위,"한은에 실지조사권 부여는 위헌"

한은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한은의 목적에 물가 안정 외에 금융 안정 기능을 추가하되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 조사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그러나 이날 법안의 핵심은 한은에 지급결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운영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며 새롭게 문제를 제기했다. 개정안이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할 경우 한은이 은행 외에도 전 금융회사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와 서면조사,현장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진 위원장은 "한국은행이 운영하는 결제시스템에 참여하는 금융회사는 은행 외에도 증권 보험 신협 새마을금고 등 2000개가 넘는다"면서 "한은이 금융회사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검사권과 함께 시정 권한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이 공권력적 행정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만큼 사실상 위헌적 성격을 갖는다"고 강력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실제 개정법이 통과되면 한국은행은 지급결제제도 참여 기관이 자신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해당 기관에 시정을 지시할 수 있고 시정 조치를 받은 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즉시 이행해야 한다. 김종창 원장도 "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은행이 통합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과 비슷한 수준의 감독과 검사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진 위원장은 "한은이 통화신용정책과 지급결제 안정을 위한 정보 취득이 목적이라면 금융 감독당국과의 정보 공유로 해결할 수 있다"며 "제도 운영상의 문제로 금융감독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한은,"금감원 권한 침식 우려가 반대 이유"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지급결제제도는 네트워크로 이해하고 있다"며 "네트워크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감시는 태생적으로 중앙은행이 갖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은행 중 가장 강력한 지급결제제도를 갖고 있는 호주 중앙은행의 경우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까지 제기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독 조사권 부여와 관련해서도 그는 "지금 상태로는 한국은행이 자료를 수집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총재는 지난 24일에도 국회에 출석,"금감원과의 공동검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선 금융감독원과의 공동검사 외에도 직접조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감원이 공동검사에 적극적이지 않고 △공동검사를 나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공동검사에 들어가도 금감원 실무자들이 검사를 받는 금융회사에 한은에는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고 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실제 현장에 나가는 실지(實地)조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재정위는 일단 이날 여야 간사단 합의를 거쳐 한은법 개정안을 상정,통과시키려던 계획을 29일 상임위 전체회의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가 예정돼 있고 법사위를 거쳐야 하는 점 등을 들어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4월 임시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위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사회적 문제 제기를 이끌어 낸 만큼 6월 임시국회 이전에 정부가 대안을 가져오면 그 때 재논의하자는 분위기다.

이심기/박준동/차기현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