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해 뇌물수수 ·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고 20일 밝혔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다 청와대 공금 10억원을 빼돌려 몰래 보관해 온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및 업무상 횡령 · 범죄수익은닉규제 및 처벌법 위반)가 추가됐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와 사위 곽모씨에 대한 계좌추적에도 들어갔다.

◆돈세탁 거쳐 지인들 차명계좌에 보관

검찰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인사관리와 재무 · 행정 업무,국유재산과 시설 관리,관내 행사 등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청와대 공금 10억원을 수차례에 걸쳐 빼돌려 이를 2~3명의 지인 명의 차명계좌에 나눠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현금을 CD(양도성예금증서)나 무기명채권으로 바꿨다가 이를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등 차명계좌 간에 수차례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세탁했다. 이후 이 중 일부만 지출하고 나머지 대부분 돈은 통장에 현금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검찰은 최근 청와대 경리담당 직원 1~2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정 전 비서관의 신병이 확보되면 10억여원이 개인 차원의 비자금인지,아니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를 위해 비축해 놓은 돈인지 규명할 방침이다.

◆정연씨 내외 해외서 송금받은 여부 조사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와 사위 곽모씨에 대한 계좌추적에도 들어갔다. 검찰 관계자는 "2006년 정연씨 내외가 해외로부터 송금받은 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좌내역을 받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은 노 전 대통령이 회갑(9월27일)을 맞은 해로 회갑 직전 박 회장이 3억원,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3만달러를 노 전대통령 측에 건넨 바있다. 검찰은 정 · 재계에서 보내온 축하금이 더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계좌에 대해서는 추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를 이날 다섯 번째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거쳐 건호씨에게 넘어간 300만달러 중 오르고스와 A사 등에 투자된 돈의 흐름 성격 등을 규명하기 위해 건호씨가 미국에서 사용한 계좌 내역과 환전 내역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건호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권 여사를 형법상 증거인멸 또는 범인은닉 등의 혐의로 처벌할 수 있지만 이들을 사법처리하지 않을 방침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편 정 전 비서관의 영장실질심사는 21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구속영장 발부여부는 밤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10일 검찰이 청구한 1차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검찰은 500만달러와 100만달러 등에 대한 조사와 주변인 조사를 모두 마친 뒤에 노 전 대통령 소환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추가로 드러난 혐의에 대한 조사에 시간이 걸려 소환시기가 5월 초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