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자체 건설 새 카드도..다자보다 북미 양자대화 추구할 듯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경한' 의장성명에 '초강경한' 외무성 성명으로 답했다.

이 성명은 북한이 그동안 경고해온 6자회담 파탄과 핵개발 노력 강화는 물론 경수로발전소 자체건설까지 포함해 군사행동을 제외하곤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들을 모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은 장거리 로켓 발사가 임박한 지난달 말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파티' 연설을 비교적 자세히 전하면서 강경에는 초강경 대응하는 것이 김 위원장의 난국 돌파 방법이라고 강조했던 만큼 북한으로선 이미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해 놓고 의장성명이 발표되자 곧장 대응수를 던진 것이다.

북한이 `외무성 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발표한 것도 앞으로 북한의 입장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은 주요 사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힐 때 주로 외무성 명의로 '성명', '대변인 성명', '담화', '대변인 담화', '대변인 대답' 등 5가지 형식을 활용하는데, 이중 외무성 성명이 가장 격이 높다.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불참, 2006년 10월3일 핵시험 예고 등 메가톤급 발표도 외무성 성명으로 나왔다.

가장 격이 높은 형식은 2003년 1월10일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정부 성명'이지만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북한은 3개항의 입장을 담은 이날 성명에서 첫째항으로 "우리의 자주적인 우주이용권리를 계속 행사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추가 '발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 의장성명을 정면거부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어 성명은 "우리가 참가하는 6자회담은 더는 필요없게 됐다"며 6자회담의 사실상 폐지와 기존 6자회담 합의의 폐기를 일방 선언했다.

북한이 지난 외무성은 "6자회담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우리의 무장해제와 제도전복만을 노리는 마당으로 화한(변한) 이상 이런 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언급한 적은 있으나 이번엔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음으로써 불참 의지를 강조했다.

한국, 미국, 중국 정부는 의장성명 발표 후 6자회담을 가능한 조기에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북한의 이러한 태도로 미뤄 기존 형태의 6자회담에 북한을 복귀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울 전망이다.

한 전문가는 "미국인 여기자 2명의 북한 억류상황 등을 감안하면 오바마 미 행정부가 대화 이외에 다른 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지만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입장료를 치러야 하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으로 기존 6자회담은 외면한 채 미국과 양자대화를 추구하거나 다자회담을 하더라도 눈엣 가시처럼 여기는 일본을 배제한 다른 형태의 회담에 비싼 '보상'을 받고 응하겠다는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일본에 대해 10.3합의에 따른 역할분담을 거부하고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면서 핵문제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난을 해왔고 이번 성명에서도 "처음부터 6자회담에 악랄하게 훼방을 놀아온" 일본의 단독제재 방침을 거론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상기시키며 일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이미 자신들에게 적대정책을 쓴다고 규정한 만큼, 이번 기회에 6자회담을 불능화 또는 폐기하고 북미간 양자교섭으로 나아가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6자회담 불참은 중국에도 적잖은 외교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상하이협력기구, ASEAN+3와 더불어 6자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려 해온 만큼 6자회담의 실패는 중국이 최근 겪어보지 못한 외교적 패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의장성명 발표에 대해 "미국의 강도적 논리를 그대로 받아문 것은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라며 상임이사국인 중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2006년 핵시험과 유엔 대북제재결의 이후 최악의 북중관계가 재연될 수 있다"며 "향후 중국이 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외무성 성명 3항에서 핵개발 노력을 재개하는 것은 물론 강화해나갈 것을 밝힌 대로 '핵무기고'를 확충해나가는 가시적 조치들을 본격화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영변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들을 "깨끗이 재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핵무기를 2개정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이 이번 성명에서 특히 "핵동력 공업구조 완비"를 내세워 경수로 발전소의 자체건설 검토라는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이 경수로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갖췄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언급은 우라늄 농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경수로 가동에는 연료봉에 필요한 저농축우라늄 기술이 갖춰져야만 하므로 북한의 경수로발전소 언급은 공개적이고 본격적으로 농축기술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의 성명은 이 대목을 6자회담에 관한 제2항에서 언급했지만, 제3항의 "백방으로" 핵억제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는 위협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북한은 성명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일본이나 남한을 겨냥해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위협조치들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성명은 일본에 대해 "위성발사를 걸고 우리에게 공공연히 단독재제까지 가했다"고 명시했다.

여기에다 우리 정부는 안보리 의장성명에 이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곧 공식 발표할 예정인데 북한은 이미 PSI 전면참여를 "선전포고"라고 규정한 만큼 서해상 등에서 국지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