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전직 대통령의 사과문이 발표된 다음날에도 봉하마을은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썼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문이 발표된 지 만 하루가 지난 8일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이 마을은 평소와 다름 없이 농사를 지으려고 논밭에 나가거나 읍내 볼일을 보러 가는 주민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을 뿐 대체로 평온하고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걱정하는 속내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읍내에 나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한 주민은 "(노 전 대통령이)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다"며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이날 오전 10시50분과 오후 5시20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지인과 친지로 알려진 외부 인사가 각각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들어와 2시간 가까이 머무르다 돌아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노 전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아는 지인과 친지가 위로차 사저를 방문했다"고 밝혀 검찰 소환에 대비한 자문을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냐는 항간의 시선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처럼 근심스런 주민과 지인들의 행보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보려고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봉하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눈길에는 평소와 다른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경북에서 온 60대 한 관광객은 "사저가 대체로 잘 지어진 것 같다"며 "권 여사가 받은 돈을 사저 짓는 데 쓴 것이 아닐까"라고 함께 온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포항에서 온 50대 여성은 "(노 전 대통령이) 탈이 날 줄 알았다"고 비꼬았다.

반면 전북에서 왔다는 50대 관광객은 검찰 수사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듯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평일에 봉하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2천명 안팎. 메가톤급 지진이 정국을 뒤흔든 뒤 '진앙'격인 봉하마을에는 8일에도 2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등 평소보다 관광객 숫자가 좀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어둠이 깔리면서 노 전 대통령 사저에는 주변 경비를 담당하는 경호원과 전경들만 보였고 생가 복원공사로 인해 가림막이 둘러 세워지면서 사저를 정면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또 하루종일 사저 주변에 머물렀던 각 언론사 취재진도 하나둘씩 철수했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내외는 평소처럼 생활하고 계시며 사저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고 상황을 전한 뒤 "사저에서는 현재 특별히 할 일도 없다"고 말했다.

(김해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b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