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법안 직권상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여야가 최후 전술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앞으로 사흘간이 사실상 올해 정국 주도권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상대방을 제압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를 실행하겠다는 것.
특히 최대 쟁점법안인 미디어관련법의 직권상정 여부가 승패를 가르는 기준으로 부각되면서 여야를 둘러싼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른바 `2차 입법전쟁'의 성격이 어느 한쪽이 모든 것을 잃거나 얻는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입법정국의 승자가 되기 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수싸움은 막판까지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 무엇보다도 직권상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설득 작업을 최우선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김 의장이 미디어관련법 직권상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확답을 받아내기 위한 강온양면책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일단 당 지도부는 김 의장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미디어법안이 직권상정될 경우 일부 이익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는 내용을 완화하는 방향의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2월 임시국회 회기내 미디어법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들다는 논리로 김 의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법이 계류상태로 남아있는 한 4월 추경과 6월 비정규직법안, 9월 예산과 같은 굵직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민주당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김 의장에 대한 압박 분위기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자기 도취에 젖어서 이미지 관리만 하려는 태도는 선출직 공직자로서 옳은 태도는 아니다"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공개발언과 미디어법이 직권상정되지 않을 경우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한 고위당직자의 발언도 김 의장에 대한 압박책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집안단속에도 골몰하는 모습이다.

일부 쟁점법안 처리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쟁점법안 처리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것.
특히 쟁점법안 처리가 불러올 후폭풍인 여야의 극한대치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당내 이견을 최소화하고 단결해야 한다는 게 당 지도부의 입장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지난달 27일 의원총회를 소집해 미디어법 처리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본격적인 설득작업에 나섰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연초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에 막혀 쟁점법안 처리를 이루지 못한 기억을 되살려 민주당의 동태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본회의장 출입구의 잠금잠치 교체 등으로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민주당이 본회의장 점거 불사 의지를 밝히고 있는만큼 끝까지 방심할 수는 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는 국회가 열리지 않는 주말에도 소속 의원들에게 `언제든 1시간내 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비상대기령을 내린 상태다.

한편 당 지도부는 쟁점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물밑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특별한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도 직권상정의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양보할 상황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원내관계자는 "민주당은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하자고 나선 상황"이라며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성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 직권상정 `D-데이'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본회의장 승부'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다.

여권의 미디어법 기습상정에 허를 찔린데 이어 또다시 밀렸다간 한 없이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다.

연말연초 본회의장 점거를 `산타클로스의 선물'로 불렀던 민주당은 3.1절 직후 예고된 이번 결전의 암호명을 `유관순 작전'으로 정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1일 "이번에는 `봄처녀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 몸으로 악법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은 직권상정의 신호탄인 심사기일 지정 시점에 촉각을 세운 채 주말 내내 점거 중인 국회 문방위 회의실에서 릴레이 의원총회를 여는 등 막바지 총력 대응 태세를 구축하고 있다.

비상대기령이 내려진 가운데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 시나리오별로 전술을 짜고 있고, 의원별 행동지침도 전달했다.

특히 제1악법으로 꼽은 미디어법이 상정돼 저지선이 뚫리는 최악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며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당 안팎에선 직권상정 강행시 법안 처리의 필수 통과처인 법사위 전면 보이콧, 의원직 사퇴 등 초강경 대응론도 거론되고 있다.

정세균 대표도 전날 야3당 대표 공동기자회견에서 "직권상정 강행시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수적 열세 속에 실력저지 외에 뾰족한 비책이 없다는 게 딜레마다. 지도부는 "묘책이 10개도 넘는다"고 장담했지만 고심을 거듭하는 분위기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본회의 재점거 기회를 엿볼 태세지만 잠금장치 강화 등 본회의장의 `요쇄화'로 진지 구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본회의 취소로 정상적 방법으로 회의장에 사전진입 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봉쇄됐다.

여기에다 `폭력정당'의 오명도 부담이다. 연말 폭력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채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서 마냥 물리력에만 의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민주당이 극적인 대타협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대여 물밑접촉을 해가며 김형오 국회의장을 거듭 압박하는 양갈래 전략을 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자유선진당은 끝까지 중재를 시도하되 정상적인 본회의 진행이 어려운 경우 표결에 불참키로 당론을 결정했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공동전선을 펴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송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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