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첩보 영화의 주인공 처럼 바그다드로 향했다”

24일 한-이라크 정상회담에서 약 35억5000만달러 규모의 이라크 유전 개발 사업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이 대통령은 과거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험난했던 이라크 시장 진출 과정을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1978년 이 대통령은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지시로 쿠웨이트를 통해 육로로 ‘비밀스럽게’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들어갔다.당시 이라크와 수교가 안돼 비자 발급도 받지 못했다.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투자가 한계점에 도달해 떠오르는 시장이었던 이라크를 잡기 위해 바그다드행을 택한 것이다.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976년 부터 10년간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야심찬 경제개발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어렵사리 권력실세들을 만났지만 미국과 가까운 한국에 대한 이미지,이라크의 친밀한 대북한 관계 등으로 인해 사업 수주는 쉽지 않았다.

혁명실세들과 밤새 술을 먹으며 인간적 관계를 터놓거나 “400년전 일본 함대를 격파,승리를 상징한다”는 설명과 함께 거북선 모형을 선물하는가 하면,포니 픽업을 기증하는 등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난관을 뚫었다.결국 화력발전소,주택건설 단지 건설 등을 수주한 것이다.그러나 1979년에 이란·이라크전 발발로 인해 공들여 닦아놓은 시장에서 탈출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이라크 상륙전에서는 보기 좋게 승전보를 올렸지만 이란·이라크 간의 진짜 전쟁 때문에 나의 ‘전쟁’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고 토로했다.이로인해 이 대통령의 신상에도 파장을 몰고와 정 회장과의 관계가 한때 냉랭해지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35억5000만달러 규모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은 이 대통령으로선 도전 30년 만에 큰 결실을 맺은 셈이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