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가능성 높아져..경협사업도 위태

북한이 조평통 성명을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남북간 합의의 무효와 남북기본합의서상 북방한계선(NLL) 관련 조항의 폐기를 선언하면서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빌미만 있으면 북측의 '행동'이 뒤따를 가능성이 커졌다.

남북간에 맺어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의 해소를 위한 합의의 주된 내용은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와 제2장 남북불가침 부분, 그리고 부속합의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호 비방중상의 중단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연락사무소의 설치.운영, 상호 무력불사용,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당국간 직통전화 운영, 해상경계선 문제 등 남북간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원칙적 합의들이다.

하지만 이들 원칙적 합의가 본격 실행된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후속 장관급회담 및 군사회담을 거치면서부터였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호비방 중단에 의견을 모으고 정상회담 직후 대남 및 대북방송을 중단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양측은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신호규정과 통신방법 등에 합의했으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 중단 및 선전수단 제거에 의견을 모으고 이행했다.

북한 조평통의 이번 성명은 이의 효력 상실을 일방 선언한 것으로, 북한이 중단했던 대남 활동들을 재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북한이 대남방송을 재개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간 합의했던 사안들이 백지화됨으로써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이미 두 차례의 교전이 있었던 데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의 쟁점화를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노출하려는 북한의 의도로 미뤄 이러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1차 서해교전이 꽃게잡이에서 비롯된 경제적 성격이 강했고, 2차 서해교전은 1차 때 패배한 북한 군부의 보복적 성격이 강했으나, 서해상에서 충돌이 재연된다면 북한이 군사적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시도할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른 전문가는 "1, 2차 서해교전 때는 남북대화가 있었던 상황이어서 양측간 제어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남북관계가 부재하고 소통로가 꽉막힌 상황이어서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무효.폐기 대상에서 경제협력 조항은 제외했지만 남북간 다양한 경제협력 사안들이 군사적 합의의 뒷받침 없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 경협 사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남북은 2003년 1월 군사 실무접촉에서 남북 연결도로 통행을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에 합의함으로써 현재 개성지역에 대한 남측 인원의 통행이 가능해졌고, 경의선 열차의 통행도 2007년 장성급회담에서 이뤄진 군사적 보장 합의로 가능해졌다.

한 전문가는 "개성지역에 대한 왕래나 금강산, 개성 등 남북공동관리구역에서의 일들은 모두 남북 군사당국간 합의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며 "북한이 군사적 합의 무효를 선언한 상황에서 최악의 국면에서는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북한의 조치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모든 토대를 허무는 것"이라며 "그동안 `기술적인' 정전상태가 `실제의' 정전상태로 진입하는 긴장고조 조치들이 뒤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물인 `10.4선언'에는 남북간 화해와 군사적 긴장완화, 정전상태 해소를 위한 원칙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번 북측의 발표가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10.4선언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공동어로구역 등에 대한 이행방안 등 구체적인 정치.군사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관련 선언의 이행을 위한 논의 자체가 이명박 정부 출범후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