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잇달아 `핵군축 회담'을 염두에 둔 언급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7일 "설사 조(북).미관계가 외교적으로 정상화된다고 해도 미국의 핵위협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우리의 핵보유 지위는 추호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반도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국 핵무기 대 우리 핵무기 문제"라고 주장했다.

북한 핵폐기의 전제조건을 북미관계 정상화가 아닌 미국의 핵위협 제거에 걸어놓음으로써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이 `핵폐기-핵위협 제거'라는 프레임으로 전개할 것이라는 의도를 드러냈다.

앞서 북한 외무성은 13일 발표한 담화에서는 미국의 핵위협 제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담화에서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는 철저히 검증가능하게 실현되어야 한다"며 "미국 핵무기의 남조선 반입과 배비(배치), 철수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현장접근이 담보되고 핵무기가 재반입되거나 통과하지 않는가를 정상적으로 사찰할 수 있는 검증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핵폐기와 동시에 미국도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핵위협을 동시에 없애야만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한반도의 핵투명성을 끌어올려 위협이 제거되어야만 자신들의 핵폐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북미 양자간 협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는 논의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방북한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CIP) 아시아프로그램 책임자에게 신고한 모든 플루토늄을 핵무기화 했고 핵무기에 대한 사찰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 것도 미국에 대한 핵군축 협상을 촉구하는 또 다른 압박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핵군축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코 앞에 닥친 `검증문제'에 대한 시간벌기용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단 핵군축 협상이 진행되면 검증문제는 북미 양자간의 협의의 마지막 단계에서 논의를 갖고 이행될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고 결국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가 전세계적 차원의 핵확산 금지에 외교적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 차원의 새로운 협상 어젠다로 핵군축 논의를 꺼내들었다는 지적이다.

또 오는 20일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본격적인 대북정책 재검토(review)에 들어가고 곧 정책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잇달아 강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대북특사 기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가 빠르면 2월 말 끝나 북한과 다시 핵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부시 행정부 시절의 6자회담의 틀이 아니라 북미 양자간의 새로운 논의구조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정책 재검토가 끝나기 전에 `핵군축 협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전문가는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에 자신들의 기본입장을 분명히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 신행정부의 외교팀이 구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구상을 만들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의도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 먹혀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후보자나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 후보자는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고 제재 등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오바마 행정부도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을 통해 이룩한 성과들에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 6자회담 채널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북미간의 양자채널을 통한 `핵군축 협상'이 실효성을 거두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