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도부가 입법전쟁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시름에 잠겼다.

당 지도부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당 지도부 구성원의 `수난'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입법전쟁을 치르면서 당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가 위상에 적잖은 손상을 입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지난해 7월 출범, 반년간 호흡을 맞춰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봉숭아 학당'이라는 말도 나온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여야 협상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수차례 열렸지만 창의적 대안은 없었다.

협상안에 대한 반대 또는 찬성의 격한 목소리만 있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은 협상 본질과 관계없는 `원내지도부 교체' 문제로 감정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2일 당시 여야간 `가(假)합의안'의 수용 거부를 결정했지만, 불과 나흘만인 6일 `가합의안' 보다 오히려 후퇴한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기로 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중진 의원은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가 자신들이 거부했던 안을 다시 추인하고, 이를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수용하라고 하는 것은 우습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번에 당 지도부가 총체적으로 무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부 최고위원들은 개인적으로 곤경에 처한 모양새다.

박희태 대표에 대해서는 그동안 `부드러운 대표'에서 `유약한 대표' 이미지가 새겨졌다.

입법전쟁 참패에 강력히 항의하며 대변인직을 내놓은 차명진 대변인의 사표를 즉각 반려했지만, 차 대변인이 "대표한테 사표를 낸 게 아니라, 국민 앞에 낸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은 점이 대표적 사례다.

한 3선 의원은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2인자이거나, 본인 스스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 박 대표는 둘다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당 대표의 `힘'이 다른 최고위원들과 큰 차이가 없어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만큼,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당 대표의 입지 강화를 위한 대표 경선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내 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는 인책론에 직면한 상태다.

대안부재론 등으로 인해 책임론, 나아가 사퇴론은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잠복된 논란거리라고 할 수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간 재격돌이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172석의 힘'을 바탕으로 협상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의원들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아울러 정몽준 최고위원은 앞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처지다.

작년 총선 당시 내건 뉴타운 공약과 관련, 법원이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직권으로 정 최고위원을 재판에 회부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