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외교.자원외교 두루 고려하는 듯

정부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공격에 대해 '조용한 외교'를 펼쳐 주목된다.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탱크부대를 비롯한 대규모 지상군 병력을 가자지구로 투입, 전면적인 지상작전에 들어간 이래 4일 현재까지 외교통상부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이나 논평을 내지 않고 있는 것.
이는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와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지난 3일 이스라엘의 지상공격 개시 직후 의장국 또는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나선 것과 대조적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지난번 휴전을 촉구하는 논평을 낸 이후 상황 변동은 조금 있었지만 오늘 중에 성명이나 논평을 낼 계획은 없다"며 "하루, 이틀 상황 추이를 지켜보고 추가적 논평을 내는 것을 포함해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선언한 직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무력충돌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휴전 상황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면적 지상공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어 지난 3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미 국무부가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갖고 있다'고 밝힌 점 등을 고려한 조치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 당국자는 이에 대해 "꼭 미국이 그런 입장을 밝힌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즉각적인 대응이 우리 정부의 이해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의 이 같은 '조용한 외교'는 한미관계와 소위 '자원외교'를 강조하는 정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미동맹을 고려하면 친 이스라엘적 성향의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게 부담스럽고 대부분이 산유국인 중동 아랍국가들과 관계를 생각하면 미국처럼 대놓고 이스라엘에 우호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밝혔듯이 '21세기 신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세계 중심부의 일원'이 되려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외교'가 지나치게 대미 일변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60여 년간 지속해 온 미국과 이스라엘의 밀월 관계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분석은 눈길을 끈다.

뉴스위크는 3일자 최신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편들기 외교가 중동 평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의 소외감과 불만을 더욱 확산시켜 왔다"며 "이스라엘에게 자위권이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과 공격을 옹호하는 일은 올바른 외교적 대응이 아니며 항구적인 중동 평화를 위해 향후 외교적 공정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hyunmin623@yna.co.kr